[시론]박성익/수능시험 변별력 높여야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6분


매년 이맘때면 대학에 진학하려는 80만명 이상의 수험생들이 12년 이상 공부해온 능력을 단 하루 만에 평가받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그런데 15일 실시된 2001학년도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재선발 기능 제대로 못해▼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가리기 위한 이 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돼 수학능력의 우열을 가리는데 필요한 변별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400점 만점인 수능시험 성적이 360점이라면 100점 만점으로 치자면 평균 90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인데도 상위권 대학입학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 일선 고교와 입시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또 100점 만점으로 치면 평균 80점대에 해당하는 수능성적 320점대의 학생들도 중위권 대학에 입학원서를 못낼 형편이라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며 당황할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의 목적이 국민공통의 기본교육이 아니라 인재를 선발해 교육시키는데 있다면, 이번 수능시험처럼 변별력이 너무 떨어지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우수인재를 선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특히 이번 수능시험은 점수 인플레 현상과 함께 학생들의 능력을 거품처럼 부풀려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능력도 있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의 수능점수와 능력도 떨어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학생의 수능 성적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수능시험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공신력과 객관성을 보장할 만한 시험제도가 수능밖에 없는 현실에서 수험생들의 점수가 한꺼번에 동반 상승하는 현상은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잣대가 흔들린 셈이다. 수능이 쉬워지면 학생들이 대학입시를 위한 시험 준비에 소홀해져 앞으로 고교 수업과 진학지도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선발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서울의 어떤 대학은 학생선발에서 동점자가 많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소수점 이하 자리까지의 점수를 따지겠다니 인간의 능력이 그렇게 엄밀하게 측정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것은 대학의 학생 선발제도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론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이 정상화되고 과외 욕구가 해소되는데 기여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지 간에 대입제도와 맞물려 돌아가는 고교교육은 부재상태요, 붕괴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능과외, 내신과외, 논술과외, 경시대회과외, 철야과외 등 다양한 과외열풍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어 교육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수능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의 우열을 가려보고자 한다면, 수능시험은 좀 더 변별력이 뚜렷하게 나타나도록 출제돼야 한다.

▼대학별 자체 시험 허용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별로 목적과 특성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학생의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필고사 형식의 시험을 대학 자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거나, 일부 대학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험을 공동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2002학년도 새 대입전형에서는 수행평가와 필기시험성적을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비중이 대폭 커지는 반면에, 수능성적은 9등급으로 산출하고 대입전형에서의 반영 비율도 낮아진다. 또한 수능성적만으로 뽑는 특차시험도 없어진다. 따라서, 새 대입제도에서는 수행평가의 공정성 유지문제, 시험성적 부풀리기, 각종 경시대회 남발, 지역간 학교간 성적격차 등으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대학입시에 대한 또 다른 불안과 불신을 높여주고 있다.

교육당국과 각 대학은 2002학년도 새 대입제도에서 직면하게 될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미리 파악해 대입 전형방안 및 전형기준에 대한 구체적 시행지침과 보완책을 조속히 마련해 대학입시와 고교교육에 더 이상 시행착오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성익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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