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인봉의원의 재판 피하기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6분


법원이 한나라당 소속 정인봉(鄭寅鳳)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를 국회에 냈다. 어떤 혐의가 있는 국회의원을 붙잡기 위해 검찰에서 그런 조처를 취한 적은 있어도 법원이 체포동의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정의원은 지난 4월 총선 과정에서 방송카메라 기자들에게 향응(460만원 상당)을 베푼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왔는데 그동안 8번의 재판 가운데 두 번만 출석했다. 따라서 이번 법원의 조처는 재판 회피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이다.

변호사인 정의원은 그동안 ‘수임사건의 변호인 자격으로는 꼬박꼬박 법정을 드나들면서 정작 자신이 피소된 사건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실제로 한나라당의 의석이 걸린 대법원 재검표(경기 광주 선거구), 신용보증기금 이운영씨 변론 때는 거의 빠지지 않고 법원 검찰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연루된 선거법사건의 첫 공판은 임시국회 개회를 이유로, 다음 공판 때는 ‘내게 적용된 선거법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부는 ‘위헌제청과 재판 출석은 별개이니 나오라’며 구인장을 발부하겠다고 벼른 적도 있다. 이런 식의 재판 회피 때문에 10월 들어 국정감사가 실시되자 “선거법 위반혐의로 피소되어있는 데도 법정에 잘 나타나지 않는 그가 법사위원으로 법원 검찰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의원의 ‘재판 피하기’로 사건은 법정처리 시한인 ‘기소 후 6개월’을 넘길 수밖에 없게 됐다. 비록 그 시한이 강제규정이 아닌, 이른바 ‘훈시’ 규정이라고는 해도 그 규정은 지켜지는 것이 입법취지에 맞다.

정의원은 법률 전공을 앞세워 정치에 나선 변호사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 다른 의원보다도 더 준법(遵法)을 수범하는 것이 도리이다. 나아가 정의원 스스로 10월초 재판부에 ‘재판에 제대로 나오지 않아 송구스럽다. 앞으로 열심히 재판에 나가겠다’는 확약서까지 낸 마당이라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의 ‘기본’에라도 충실했어야 한다.

그가 실로 향응을 베푼 사실을 부인하고, 억울한 야당 탄압이라고 확신한다면 당당히 법정에서 다투고 따지면 된다. 체포동의 요구까지 받은 것은 정치인이요 법조인인 그로서는 피소(被訴) 이상의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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