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은주/관람객 다양한 욕구 충족을

  • 입력 2000년 11월 15일 18시 57분


‘인상파와 근대미술전’이 10월 25일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됐다. 이 전시회는 프랑스의 대표적 근대 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상파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던 바르비종파와 사실주의, 그리고 인상파로부터 영향을 받은 후기 인상파와 상징파, 나비파 등의 예술활동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지만 개막한 이후 신문 방송 등 언론이나 입소문을 통해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미술관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마네, 모네, 고흐, 고갱, 세잔 등 근대 거장들의 숨결과 예술세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관람객은 이미 6만5000명을 넘어 하루 평균 약 4400명이라는 경이로운 수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내년 2월27일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는 30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미술품만 다룬 단일 전시회로는 최대 관람인원이라는 기록을 세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회를 ‘미술계의 블록버스터’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전시회가 대중적인 흡인력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별로 예상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인상파전을 보기 위해 미술관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단지 대중적인 인기의 결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추위를 무릅쓰고 미술관 밖에서 2, 3시간씩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이 전시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결의마저 느껴진다.

관람객들이 보여주는 전시관람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하다. 작품 하나 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장에 붙어 있는 설명자료를 빠짐없이 읽어보면서 지나간다.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층 관람객들은 70, 80년대에 국전을 보기 위해 덕수궁을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듯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젊은 어머니는 아이의 미적 감수성을 개발해 주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망설임없이 하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친구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장난기 많은 중고생들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기만 하다. 미술시간에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작품을 찾아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한 비평가는 프랑스 현지에서 보았던 작품들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주제설정이 제대로 되었는지 그리고 주제에 합당한 작품이 선정되었는지를 날카롭게 살펴본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미술관을 찾은 것이다.

이러한 관람객들을 맞이하면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미술관 본연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시기획이라는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계층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순수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찾는 사람, 교육적 목적에서 찾는 사람, 연구를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 찾는 사람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기획자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이것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과 같아서 학술적, 예술적으로 준비된 전시의 경우에는 일부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전시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전시라도 내용 면에서는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은 경우가 많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전시회는 미술관 전시기획의 질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를 남길 것이다. 보다 가치 있는 문화 매개활동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이를 향유하게 하는 일, 이것이 미술관 전시기획의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고 있다.

최은주(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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