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바둑세상만사]0.00005집의 계가를 하는 미 대통령선거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1시 44분


미국의 43대 대통령 당선자는 누구일까. 고어인가, 부시인가.

투표가 끝난지 여러날이 지났지만 당선자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문제가 된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공식적인 집계결과 발표가 없어서인지 언론마다 잠정집계한 수치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이 또한 시시각각 변해 오히려 혼란만 더한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미국 플로리다주의 총유효투표수는 590만표를 약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 개표결과 부시가 290만 9135표, 고어가 290만7351표를 차지해 두 후보간의 표차이는 1784표인 것으로 발표됐다.

그런데 일부 카운티에서 재검표해 표차가 줄었고 팜비치 카운티에서 수작업으로 2차 재검표를 했더니 표차는 더 줄었다. 얼추 전체유효투표의 0.00005%에 해당하는 숫자다.

바둑으로 치면 반집도 못되는, 10만분의 오집 차이 밖에 나지 않는 형세가 되었으니 속된 표현을 빌자면 눈 터지는 계가 바둑이 된 셈이다. 바둑의 반집승부도 피를 말린다고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서 만분의 오집 승부가 되었으니, 미국인 뿐 아니라 전세계 관전자까지 여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도 이쯤에서 어느 한 후보가 패배를 인정한다면 실제 표차이와 상관없이 상대후보의 당선이 인정된다고 한다. 개표 막바지에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에게 당선축하전화를 했다가 서둘러 취소한 것은 이것이 패배인정으로 비추어질까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런데 이 패배인정, 이것은 바둑의 룰과도 아주 흡사하다.

바둑도 대국종료시 어느 한 대국자가 졌다고 인정을 하면 실제 집차이와 상관없이 그 대국자가 진 것으로 처리된다. 며칠이 지나서 다시 검토해보니 내가 이겼다라고 주장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계가에 의문이 있다면 졌다는 말을 하지말고 대국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재확인을 해야 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은 프로기사의 대국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웬만한 프로기사라면 반집승부의 결과까지 대국이 끝날 때 쯤이면 거의 예측한다. 그러나 초읽기에 몰려 정신없이 두다보면 이긴줄 알았는데 한두집 지는 일은 흔하다. 이럴 때면 멋쩍게 바둑판 아래를 기웃거리거나, 기보용지까지 확인해가면서 재계가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얼마전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서봉수 9단이 일본의 야마다 기미오 9단에게 한집반을 졌을 때도 계가가 끝나자 '어 내가 이겼는데 왜 이렇지?' 하는 듯한 서 9단의 당황한 표정이 텔레비전으로 전해진 적이 있다. 서 9단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이긴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니아마도 대국이 끝나자마자 이를 바로 재확인 했을 것이다.

지난 9월말에 열렸던 흥창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본선 1회전에서도 권효진 2단과 중국의 왕 루이 3단 간의 대국에서도 계가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바둑이 끝나자마자 왕 루이 3단이 자기가 따낸 상대 사석을 돌통에 모두 집어넣어다는 것. 우리 규칙대로 하면 사석으로 반상의 집을 메워어야 하는데 왕 루이 3단이 갑자기 중국룰과 혼동을 일으켜 나온 행동이었다. 진행요원까지 불러 기보검토를 해가며 재계가한 결과 바둑은 권효진 2단의 반집승.

승부결과가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의를 제기하라. 결과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졌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엄한 바둑의 계가규칙을 들먹거려봤다.

김대현 <영화평론가·아마5단>momi21@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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