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끝나지 않은 노래

  • 입력 2000년 11월 9일 19시 08분


지난 주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포크콘서트는 4000석의 좌석이 연일 만원을 이뤘다. 출연자들은 70년대를 휩쓸었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양희은 ‘빅 4’. 관객들도 당연히 40, 50대였다. 처음부터 중년 세대를 겨냥해 기획된 행사였기는 해도 일찍부터 표가 매진될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몰린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관객들 반응도 여느 대중가수의 콘서트 못지 않게 뜨겁다. 그러나 가수들의 얼굴을 보면 문득 ‘세월은 속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나이가 적은 양희은이 만으로 48세다. 청바지 차림에 청초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나머지는 50세를 훌쩍 넘어섰다. 이들이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조개껍질 묶어)를 부르고 ‘긴 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토요일밤)을 외치는 것은 무척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관객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런 부조화(不調和)를 관객들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추억’이나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외에 이들의 발길을 콘서트장으로 옮기게 만든 다른 뭔가가 있을 법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콘서트가 끝난 뒤 밝게 변한 관객들 표정에서 어렴풋이 해답이 찾아진다. 우리 40, 50대의 트레이드마크인 딱딱하고 무표정한 얼굴이 모처럼 행복하게 바뀌어 있었다. 극장에 온 것은 잠시나마 옛 생각에 빠져 ‘인생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 문화풍토에서 중년층은 공연장을 거의 찾지 않는다. 공연 대부분이 젊은 관객들로 채워진다. 그러던 중년층 관객들이 최근 크게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사추기(思秋期)’로 불리는 중년의 정서가 함께 빚어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구조조정이다 퇴출이다 해서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40, 50대의 험난한 세상살이를 보여준다. 누가 뭐라고 흠을 잡더라도 그 시절 가수들의 노래가, 중년세대가 따라부르는 노래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홍찬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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