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현대건설 해외부도 위기]무리한 채권발행이 화근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33분


현대건설이 지난해 유로시장에서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갚지 못해 해외부도(결제 불이행·디폴트)를 낼 위기에 처해 있다.

현대건설 자금팀 관계자는 7일 “8000만달러(약 900억원)어치의 해외 BW 조기상환 요구를 6일까지 해결해야 했지만 아직 갚지 못하고 있다”며 “유예기간 마감일인 13일까지 모두 갚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현대건설이 이날까지 달러화로 BW를 상환하지 못하면 해외부도를 내게 된다. 해외채권자들의 채무이행 요구가 빗발치고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채권은행들의 신규자금 지원이 중단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대건설이 자체자금으로 이를 갚을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6일까지 달러화로 결제은행인 도이체방크에 8000만달러를 입금해야 하지만 계약서에 ‘1주일간 유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BW는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기 5년짜리 현대건설 BW가 발행 후 1년이 갓 지난 시기에 ‘태풍의 눈’으로 부각된 것은 채권자들이 되팔 수 있는 풋백옵션을 갖고 있기 때문.

현대건설은 작년 11월초 현대증권 LG투자증권 보스턴 트러스트컴퍼니(BTC)를 공동 주간사로 BW를 발행했다. 이자는 연 2%,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연 5%를 보장한다는 조건. 올 2월부터 주당 7835원에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붙었다.

BW를 발행한 작년 하반기는 대기업들이 ‘부채비율 200%’라는 지상과제를 이행해야 하는 막바지 단계. 돈 되는 자산은 다 팔고, 무리하게 외자를 끌어들이던 시기였다.당연히 정상적으로는 BW 발행이 어려웠다.

현대건설은 이에 따라 ‘당근’ 하나를 더 제시했다. 채권 보유자들에게 1년 뒤부터 발행사에 BW를 다시 팔 수 있는 권리, 즉 풋백옵션을 준 것.채권자 입장에선 땅 짚고 헤엄치기. 최악의 경우 연 2%의 이자만 챙기고 원금은 회수할 수 있는데다 현대건설 주가가 크게 오르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불거진 유동성위기 때문에 현대건설 주가가 폭락해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인 7835원에 이를 것 같지 않자 채권 보유자들은 이미 한 달 전 풋백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900억원의 돈을 싼 이자로 끌어썼다고 생각했던 현대건설은 불과 1년 만에 상환압력을 받게 됐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신주인수권부사채(BW)▼

Bond with Warrant. 일정기간이 지나면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청구할 수 있는 채권. 고정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Bond)과 주식인수권리(Warrant)를 따로 매매할 수 있으며 발행기업의 주가가 최초 BW 매입가를 웃돌면 신주를 인수해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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