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피플]고양시 러브호텔 대책위 김인숙 공동대표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30분


“저도 ‘가정의 행복’을 제1의 인생목표로 삼는 평범한 주부예요.”

일산신도시 러브호텔 문제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고양시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 난립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김인숙 공동대표(46)는 ‘운동권 투사’가 아니라 ‘소박한 주부’였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러브호텔 업주는 물론 공무원들도 바짝 긴장하는 요즘 그는 이전보다 더욱 바쁜 하루를 보낸다.

1년여를 끌어온 러브호텔 반대운동이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어 고양시에서도 주민대표가 함께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곧 구성될 대책위에 직접 참여해 문제를 마무리할 겁니다. 시민운동이 한층 성숙한 단계에 접어드는 거지요.”

러브호텔 반대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해온 경력 때문에 ‘운동권 출신’이란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특유의 구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던진다.

“여상을 졸업하고 6년 만에 들어간 대학을 2학년 때 중퇴했어요. 학과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데다 남편 만나 결혼하느라 학교를 그만뒀어요. ‘대학 운동권’과는 상관없지요.”

그가 ‘시민 운동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결혼을 하고서도 6년이 지난 89년의 일. ‘여성민우회’에서 개최한 교양강좌에 취미활동 하러 나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것.

“정말 충격이었죠. 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은 결코 집 안에만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금융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일본으로 발령받는 바람에 1년도 채 활동을 하지 못하고 5년 동안 도쿄 외곽에서 생활했다. 거기서 일본의 러브호텔을 관찰했다. 주택가와 떨어져 있긴 했지만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결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임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불행히도 똑같은 외관을 한 러브호텔이 주택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이를 첫 운동목표로 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엄마들처럼 잘 해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죠.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리라 생각해요.”

고1인 아들뿐만 아니라 초교 3학년인 딸도 엄마가 왜 밖에서 힘들게 반대운동을 하는지 알게 됐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밀려오는 나쁜 환경들로 가정과 학교가 얼룩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러브호텔이 안고 있는 사회적 법적 문제점은 물론 현황까지 훤히 알게 됐다.

하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가슴 저미는 일도 많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98년 초. “지방선거로 정말 바빴는데 아이가 등교 거부증세를 보이지 않겠어요. 늘 엄마와 떨어져 있는데다 낯선 학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거죠.”

잠시 후회도 들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 달 동안 아이와 함께 등교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에서 지켜봤다. 아이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고, 지금은 지친 얼굴로 귀가하는 엄마의 등을 주물러 줄 만큼 어른스러워졌다.

그는 남편에 대해서는 끝내 숨기려다 “무뚝뚝한 동갑내기 경상도 사나이”라고 소개하며 “매일 늦게 들어가도 ‘잘 되나?’ 하고 던지는 한 마디에 힘을 얻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양〓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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