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58분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3일 52개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금융권의 목을 조여 경제전체에 부담이 되어온 부실기업들을 솎아내는 조치였기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발표내용을 보면 채권은행단의 선택이 당장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1차 구조조정 때보다 한결 강도가 높아졌지만 회자되던 일부 대기업들이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선명하게 가셨다고는 보기 어렵다. 현대건설의 경우 비록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원칙이라지만 처리시한이 연장됐다는 점에서 역시 당분간은 불확실성으로 상존하게 됐다.

그나마 법정관리 정산 또는 매각대상으로 분류된 기업들이 시장에서 무난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정리된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 경제가 새로운 모습을 그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꺼번에 많은 수의 기업이 정리됨에 따라 실물경제는 당분간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기업과 관계를 맺어온 협력사들의 잇단 도산도 우려되고 있으며 자금시장의 일시적인 경색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후유증은 사전에 모두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인 만큼 정부와 금융권이 충분히 대비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설혹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옳다면 당국은 그때마다 신속한 후속조치들을 소신 있게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퇴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습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해당 주체들의 협조다. 이들이 대립적 위치를 고집한다면 구조조정은 진통의 시간만 끌면서 결실은 없을 것이다. 적지 않은 일자리를 잃어야 할지도 모를 노동계의 고통에 대해서는 정부가 각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가 얼마나 정교하게 집행되느냐에 따라 국가경제의 회생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와 채권은행은 2차 구조조정의 정신과 원칙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벌써부터 퇴출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설혹 지금 정실에 의해 살아남은 기업이 있다 해도 은행이 고스란히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점을 인식해 속히 원칙에 입각한 시정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가 실패할 경우 어쩌면 우리는 수년간 경제회복의 기회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퇴출 이후’를 설계하고 실천할 것을 각 경제주체에 호소한다. 그때 진정한 시장경제가 우리 손으로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