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홍역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45분


우리 속담에 ‘홍역(紅疫)은 평생에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고 한다. 홍역은 누구나 한 번은 꼭 치러야 하는 병이라는 것이다. 산모가 홍역을 앓은 적이 있으면 갓난아기는 4∼5개월 동안 면역성을 지닌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생후 15개월을 전후해 예방접종을 하는데 예전에는 이걸로 홍역은 끝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3년전엔가 예방접종을 했어도 홍역에 다시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니 속담에 틀린 말은 없는 모양이다.

▷요즘 경기도 이천 일대에 때아닌 홍역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이 지역 초등학교 학생 1000여명이 집단으로 홍역에 걸려 한 초등학교는 2주일간 휴교령을 내렸는가 하면 다른 몇몇 초등학교들도 수업을 잠시 쉬어야할지 검토중이라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이상한 것은 95년 이후 감염건수가 크게 줄어 97년에는 고작 2건이었던 홍역이 지난해(88건)부터 늘어나더니 올해는 벌써 3000건이 넘어 10년전 발생건수(90년 3415건)를 웃돌게 됐다는 점이다. 생활환경이 나아지면 없어지는 병이라고 해 ‘후진국형 질병’으로 분류되는 홍역이 왜 이렇듯 다시 창궐하게 된 걸까.

▷하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전에 우선은 자녀들에게 2차 홍역 예방주사를 맞히는 일이 급하다. 요즘 홍역을 앓는 어린이들이 대부분 갓난아기때 한 차례 예방접종을 하고 말았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올해 홍역은 4월 경북, 6월 전남, 10월 전북에 이어 11월 경기지역으로 북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이 다음 차례일 수도 있다. 방역당국의 철저한 대비와 함께 특히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다.

▷홍역이야 예방접종을 하고 건강에 조심하면 이길 수 있는 전염병이다. 보다 무서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총체적 불신과 망국적 부패의 병이다. 집단이기와 계층갈등, 지역갈등의 병이다. 홍역도 조심하지 않으면 기관지폐렴이 되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듯이 불신과 부패, 갈등의 병이 깊어지면 사회공동체는 무너진다. 한 번 치르고 넘어갈 수 없는 병,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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