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은경/왜 스스로 ‘죽음의 길’ 택할까

  • 입력 2000년 11월 1일 19시 00분


장래찬 전 금융감독원 국장은 어떤 심리상태에서 자살했을까. 범죄와 관련된 자살은 범죄 현장에서 용의자가 자살하는 경우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던 사람이 자살하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범죄현장에서의 자살은 대개 살인을 한 뒤에 범죄자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데 범행 후 자신을 보전하려는 동기보다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끝내려는 동기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동반한 살인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대개 오랫동안 가정불화를 겪어온 우울한 가해자가 배우자로부터 거절당한 후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극심한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공공장소에서 다수의 사람을 죽이고 범죄자가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개 우울증이나 편집증 등의 정신병력이 있고 삶의 좌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파괴한다. 작년 봄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고교에서 2명의 청소년이 13명의 동료학생과 교사를 기관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들도 목숨을 끊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범죄사실이 명백하지 않고 혐의만 있는 경우에도 용의자가 자살해 수사 관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한 대중잡지에 성범죄자들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지역사회에서 소아기호증이 의심되는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된 적이 있다. 명단에 이름이 포함된 사람들은 동네사람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고 그 중 몇 사람은 자살했다. 범죄 혐의자가 자살한 경우 그 혐의의 진위가 가려지지 못한 채 주변사람들은 그가 자기 잘못에 대해서 정말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를 처벌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살했을 것으로 추론할 뿐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공통점은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의 원천은 수치심 분노 절망감 외로움 체면손상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자살행위를 통해서 진정으로 성취하려는 것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고통상태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자살자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거나 결백하다는 메시지를 남겨 자기 행위의 의도를 호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먼저 갈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뒤처리하라’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장래찬씨가 정말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공공연하게 호소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맞서 싸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책임있는 공직에 있던 사람이 그 정도의 심리적 고통을 이겨낼 강인함이 없이 자신만을 위한 최종결단을 내린 것은 동방금고사건 때문에 일반 국민도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며 사건에 대한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킬 뿐이다.

조은경(한림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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