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백설공주 "의붓엄마가 못됐다구요?"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30분


저는 백설공주예요. 눈처럼 흰 살결, 피처럼 붉은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아이죠. 낮의 흰색과 밤의 까만색 그리고 생명의 빨간색. 뭔지 원초적이면서 강렬한 분위기가 풍기는 것 같지 않으세요?

게다가 의붓엄마 때문에 몇 번씩 죽었다 살아나고, 숲속에서 일곱 난쟁이와 함께 살고, 왕자와 결혼하고, 혹독한 벌로 의붓엄마를 죽이는 등, 제 이야기에는 아주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옛날이야기 주인공 중에서도 저는 특히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요.

옛날이야기가 다 그렇듯, 제 이야기도 한 인간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심리적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읽을 수 있대요. 부모에게 기대 살던 어린 시절을 벗어나 독립하기까지의 많은 어려움과 그 극복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지요. 엄마하고 왜 그렇게 사이가 나쁘냐면요, 아빠 품보다 엄마 품 떠나기가 더 어렵고,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더 많기 때문이래요.

궁전, 그러니까 집을 떠나 숲속, 그러니까 사회로 나간 저는 부모와는 또 다른 면에서 도와주는 난쟁이들과 살면서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요. 말하자면 요리나 바느질 같은 ‘일’을 하는 거죠. 하지만 그 난쟁이들과도 영원히 함께 살 수 없어요. 엄마는 그걸 알기 때문에 자꾸 저를 찾아와 죽었다 깨어나도록, 그러니까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저는 난쟁이들을 떠나 왕자와 결혼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공주나 왕자 같은 왕족을 동경하게 만드는 허황한 이야기라고 나무라지 마세요. 옛날이야기의 왕자나 공주는 자신의 존재를 가장 빛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상태의 상징이에요. 결혼만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고요?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의 과정이 기본 틀인 이야기라서 그러는 거예요.

의붓엄마는 으레 나쁜 사람 만든다고 나무라지도 마세요. 정 떼기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그런 식으로 상징하는 거니까요. 날 죽이려는 게 원래는 의붓엄마가 아니라 친엄마라는 학설도 있다구요. 바느질 요리 청소를 여자 일로 못박아 놓는다고 야단치는 일도 다시 생각해 주세요.

제 이야기를 희한하게 비튼 이야기들도 있더군요. 제가 일곱 난쟁이들의 노리개였다나요? 의붓엄마와 힘을 합쳐 여자를 우습게 아는 난쟁이들을 쫓아내고 숲속에 여성 센터를 세운다는 것도 있고요. 재미있죠?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수록 제 존재는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누가 또 제 이야기, 재미있게 비틀어서 하나 써 주실래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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