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첫 조종사 파업이 남긴 숙제

  • 입력 2000년 10월 22일 23시 47분


외국에서나 있는 일로 생각했던 항공기 조종사 파업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어났다.

5월 대한항공에 일반 직원 노조와 별도로 설립된 조종사 노조가 노동부의 신고필증을 받음으로써 조종사들이 파업을 통해 항공기의 운항을 정지시키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항공사는 여느 제조업체와 달리 파업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다. 김포국제공항의 기능이 부분 마비되고 국제선 국내선의 결항 사태가 빚어져 예약 승객들의 발이 묶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연 노사 양측이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비록 하루 만에 파업이 종료돼 오늘부터 정상 운항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행여 파업 후유증이 남아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조종사들의 파업은 일반기업의 그것과는 달리 항공사의 수익 구조에도 치명상을 입힌다. 일반 제조업체는 파업 기간의 생산 손실을 시간외 작업을 통해 벌충할 수 있지만 항공사가 한번 놓친 고객은 다시 붙잡아올 수 없다.

대한항공은 파업으로 인한 결항 사태가 계속될 경우 하루 평균 매출 손실이 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실례로 에어프랑스는 조종사 노조가 98년 월드컵 기간에 맞춰 일으킨 파업으로 2억6000만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항공사의 경영 악화는 필연적으로 안전과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고유가(高油價)와 소비 위축으로 수익 구조가 악화되는 상태에서 이번 파업으로 대한항공이 입은 유형무형의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노사 합의안에는 최장 비행시간을 월 75시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도 들어 있다. 대한항공은 숙련 조종사가 모자라 성수기에는 월 100시간을 넘겨 비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노조가 요구하기 이전에 무리한 비행시간을 시정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옳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국적 항공사는 연간 250명 가량의 신규 조종사를 필요로 하지만 자체 교육과 공군 전역자 등을 통해 확보되는 인력은 150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외국인 조종사 채용 동결을 요구했지만 현실적으로 조종사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대한항공 노사가 국내외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앞으로도 최악의 파업은 피하는 슬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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