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고 민주화의 길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39분


남부유럽 발칸반도의 화약고라 불리는 유고에 13년간 독재정치를 펴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것은 다시 한번 피플 파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신임대통령은 당초부터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표부정 의혹이 확산돼 유고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에 힘입어 집권하게 됐다.

그러나 코스투니차 정부가 걸어야 할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밀로셰비치 정권을 지배했던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새 정부에서도 온존할 조짐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밀로셰비치 전대통령이 세르비아 민족주의 강경파라면 코스투니차 대통령은 온건파일 뿐 기본적으로 같은 성격의 민족주의자이기 때문에 유고 내 소수민족 정책 등 내정개혁이 제약받을 수 있다.

유고가 최근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코소보에서 유고연방군이 자행한 소수민족 학살사건 때문이었다. 작년 3월 나토군이 유고공습을 단행했을 때 일각에서 주권침해라는 지적도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살을 자행하는 나라의 주권보다는 약소민족의 생존권 보호가 더 정당하다는 이른바 ‘신개입주의’가 특히 서방국가 시민사회의 중론이었다. 과연 코스투니차 정부가 유고 내 약소민족의 인권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스투니차 대통령 앞에는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해 온 관료조직을 어떻게 장악할 것이냐는 과제가 놓여있다. 코스투니차 대통령이 작년 3월 국제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된 밀로셰비치를 심판대에 넘기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런 필요에서 구정권측과 타협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고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난 해소이다. 그 경제난은 서방국가들의 유고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려야 치유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즉각 경제제재를 풀 수 있다는 뜻을 표하고 의장국인 프랑스는 유고가 EU회원국이 아니지만 코스투니차 대통령을 EU총회에 초대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그와 조속히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화혁명을 이룬 유고 국민에 대한 지지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유고가 위대한 시민혁명을 계기로 내정개혁과 경제난 극복에 성공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들을 존중하는 나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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