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빛과 그늘]콩고 난민 청년 무벤가 카닌다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52분


“나는 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벤가 카닌다는 JFK공항 근처에 있는 웨큰헛수용소의 좁은 방에 앉아 수줍고 약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2월 초의 일이었다.

1996년 이전에는 망명을 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 중 카닌다씨처럼 합법적인 서류가 없는 사람도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수용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의회가 불법이민 개혁법을 통과시킨 후에는 제대로 서류를 갖추지 못한 망명자들은 모두 수용소에 일단 구금돼야 한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동안 이 수용소를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다.

카닌다씨는 웨큰헛에 수용돼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인 콩고민주공화국에 돌아갈 경우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3년 전인 97년 봄, 장기집권을 하던 모부투 정권이 반란군 지도자인 로렌트 카빌라에 의해 전복된 뒤 모부투 정권 하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던 카닌다씨의 아버지가 카빌라 휘하의 병사들에게 끌려가 살해당했다. 카닌다씨는 그 때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 1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며 간수들에게 지속적으로 고문을 받았다. 그는 결국 자신이 소속돼 있는 교파의 신도들이 손을 써준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1998년 가을에 카빌라 정권이 투치족이 이끄는 르완다 정부와 전쟁에 돌입하면서 투치족인 카닌다씨 어머니의 신변이 불안해졌다. 카닌다씨는 가족과 함께 잠비아로 도망치려 했지만 중간에 강제로 차에서 내려 어머니가 경비병들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가 역시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조여권을 만들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공항에서 웨큰헛으로 곧장 끌려갔다. 그나마 공항에서 곧바로 추방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난민들을 도와주는 변호사 단체와 알게 돼 몇 번이나 가슴을 졸이는 순간들을 겪은 끝에 마침내 5월에 판사로부터 망명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일자리와 살 곳을 구하는 것만도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소의 탁한 공기를 벗어나 진짜 뉴욕의 공기를 마시게 된 그는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바빠 보인다”며 “나는 그런 뉴욕이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00917mag―pres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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