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신경제'를 경계하는 이유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52분


미국 증권시장에서 한때 첨단기술주에 대한 끝없는 낙관론으로 명성을 얻었던 분석가 제임스 크래머가 지난주 기술주에 대한 환멸을 선언했다. 그는 특히 첨단주의 ‘4대 기수’로 꼽았던 델,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크래머는 지난주 비즈니스위크지 인터넷판에 실린 글에서도 ‘신경제의 4대 기수’를 언급했으나 시스코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종목은 오라클, EMC, 선으로 교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크래머가 새로 작성한 유망기술주들이 주로 개인용 컴퓨터와 컴퓨터 네트워크에 관련된 회사들이라는 점. 이는 크래머가 그동안의 신념을 버렸다는 사실 외에도 첨단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환멸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런 환멸은 지난 여름 최고치에 올랐던 나스닥지수를 20%나 하락시켰다. 말하자면 ‘슘페터의 복수’인 셈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로 미국에 건너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조지프 슘페터는 신경제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젊은 시절의 슘페터가 ‘지속적인 기술의 변화가 자본주의 정체성의 일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착안해 낸 주요 경제학자였다. 하지만 슘페터의 명성은 그가 “기술 진보의 원천은 ‘창조적 파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그런데 경제인들은 “신기술은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구기술의 가치를 잠식한다”는 슘페터의 이론을 실물경제의 미래를 부풀리고 주식시장의 불규칙성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잘못 인용해왔다.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은 몇 달 전만 해도 슘페터 이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창조’에만 집착했고 ‘파괴’는 구경제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했다.

일부 첨단기술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후계자를 찾아나선 투자자들 덕분에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지난 여름 모든 첨단기술 회사들이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될 수 없음을 알았고 결국 첨단주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창조적 파괴’가 구경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것. 광섬유나 무선네트워크 같은 흥분할 만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제2의 인텔’로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인텔이 신기술의 등장으로 쇠퇴 중인 ‘제2의 IBM’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기술주 급락현상에 대해서는 시장의 반응이 지나치다는 해석도 있지만 전도 유망한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숨쉴 틈 없는 기술의 진보가 역으로 신경제 기업의 단명(短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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