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인북]바이오혁명 물결…새 규범은 무엇인가?

  • 입력 2000년 10월 6일 18시 37분


“상충하는 이익에 대한 형량적 사고야말로 법학의 합리성의 정수이다.”

근대적 법리에 따른다면 상충하는 이익에 대한 형량의 적용은 원칙적으로 국가와 개인, 혹은 제도와 인격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생명공학이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옴에 따라 이익의 충돌이 새로운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이제까지는 보살핌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던 의사와 환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과 부모, 개인 신체의 온전성과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등의 사이에서 긴장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교수로 법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법률가들의 법익 형량적 사고가 시험대에 올랐음을 지적하며 생명공학의 영향하에 있는 현대사회의 법과 윤리 문제를 검토한다.

권리 자유 계약 프라이버시 신체의 완전성 등과 같은 법 개념들은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생명과학기술의 적용을 둘러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런 개념들을 가지고 생명 과학의 응용으로 야기된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에 접근해 들어가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명확성, 기대 가능성, 개별 행위 책임, 비례성 등으로 규정되는 전통적 법 원리들이 발생된 위험이 아닌 미래에 발생할 위험, 확실한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 개별 행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위험 따위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생명공학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위험사회’의 복잡성, 불확실성, 불안정에 대응해 ‘추상적 위험범’의 확대, ‘보편적 법익’ 개념의 등장 등 형법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런 움직임은 실제적 법익 침해 전 단계에서 ‘범죄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형법 판단의 대상이 되는 행위 범주를 확대시키게 된다. 하지만 불안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위험 가능성 있는 행위를 초기단계에서 저지하기 위해 형법이라는 고도의 통제 방법을 마련한다.

물론 저자는 법적 제도의 마련이 이 모든 문제 해결의 최선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항상 법 이전에 ‘윤리’의 관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 박은정 지음/ 이화여대출판부/ 684쪽/ 2만3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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