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깊이듣기]연주회 걸림돌은 팸플릿?

  • 입력 2000년 10월 2일 18시 32분


후배와 함께 어느 젊은 성악가의 '귀국 독창회'에 갔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후배는 연주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형, 이건 '방랑자의 밤 노래'죠?" 프로그램에 'Wanderers Nachtlied'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 맞아." 후배에게는 독일어와 영어의 유사성을 매개로 수수께기같은 곡목을 풀어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나보다. 그러나 기자는 입맛이 썼다. 도대체 왜 제목을 번역해 넣지 않은 걸까. 결국 후배는 'Nur wer die Sehnsucht kennt'(다만 그리움을 아는 이 만이)에서 막혀버렸다.

누구나 틈만 나면 고전음악의 '보급'을 이야기하고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연주장에서 연주자들은 관객을 소외시킨다. 우리말 제목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연주장에서 배부되는 프로그램은 그래도 페이지 수가 많아서인지 최근에는 거의 우리말 곡목을 넣게 됐다. 그러나 공연을 사전 홍보하기 위한 한 장짜리 '전단지'는 거의 원어 제목으로만 채워진다. 모든 명곡의 원어제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관객으로 유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성악곡이나 제목붙은 기악곡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Klaviersonate'(독:피아노소나타) 'Ohne Begleitung'(독:무반주)처럼 영어실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가득하니 초보관객의 흥미를 끌어들일리 만무하다. dur(장조)와 moll(단조)은 기자도 종종 혼동을 겪곤 한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런 원어제목들에 오자 탈자가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독일어 '움라우트' (모음 위에 점 두 개를 찍어 변모음을 표시하는 것)는 생략되거나 아예 해당 모음 자체를 빠뜨리기 일쑤고, 프랑스어의 갖가지 액센트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거나 잘못 찍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럴 바에야 왜 원어만을 고집하는지.

음악가들이 관객들에게 잘보여야 성공했던 18,19세기 서양사회에서라면 이런 식으로 관객을 깔보는 연주자는 설 자리가 없었 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음악가들은 관객이 아니라 대학 강단의 선배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성공의 길이므로, 제목 번역 같은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쓸 겨를이 없나 보다. 어차피 음악팬은 이제 세계 일류만 찾아 들으니까, 지구촌 전체의 관객을 상대하는 몇몇 소수의 음악가만 관객을 의식하면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깊이 듣기' 와 관계 없는 불평 한마디 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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