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의 위기'

  • 입력 2000년 9월 28일 18시 49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약 6000종으로 추산된다. 언어의 종류가 이처럼 많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소수민족들이 지구상에 많이 살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문제는 소수언어들이 급속하게 ‘멸종’되고 있는 점이다. 70년대만 해도 8000종에 달했던 언어 종류는 20여년만에 2000종이나 줄었다. 인터넷 보급으로 소멸속도는 더 빨라져 조만간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언어의 멸종은 문화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민족들은 언어를 잃음과 동시에 고유의 문화도 상실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약자 중의 약자인 이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고유 언어와 문화를 포기하고 세계화 물결에 편입되고 있다. 현재의 세계화는 강대국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길게 보면 강대국이외의 국가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두드러지는 것이 문화의 획일화 현상이다. 미국 할리우드영화와 코카콜라 맥도널드햄버거 CNN뉴스가 지구상 곳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생물의 다양성이 무너지면 생태계 전체가 위협을 받듯이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면 수만년간 축적되어온 인류 문화와 정신세계가 위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반대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26∼28일 서울에서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한 그는 세계화에 따른 ‘문화의 위기’를 애써 강조했다.

▷그는 자유교역이 일반화됨으로써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나라들이 문화적 특수성을 지켜내기가 어려워졌다고 개탄했다. 작가나 지식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얻어낸 예술의 자율성이 세계화의 상업논리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의 지적은 세계화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온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엊그제 IMF총회가 열린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문화적 전통과 고유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은 세계화 이전에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과제다. 우리 문화의 현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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