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재천/'자연사박물관' 더 미룰 일 아니다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57분


오랜만에 문화계 사람이 문화관광부의 수장이 되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해야 할 일이지만 적지 않은 기대를 하게 된다.

문화의 세기가 시작된 지 250여일이 지났건만 우리 문화계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날짜까지 거꾸로 세며 법석을 떨더니 어느새 문화가 무슨 얼어죽을 문화냐는 식이 돼 버렸다.

함께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세계화의 바람이 오히려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경제의 세계화가 문화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19세기 영국의 수필가 아널드는 “문화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의 수호신”이라고 했다. 그동안 인류의 복지 향상의 일등공신이었던 과학기술도 자칫하면 우리를 불평등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부의 평등한 분배를 돕겠다는 정치도 오히려 불평등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법이 우리를 평등하게 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화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평등하게 만든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의 표현을 빌리면 ‘성취할 수 있는 자유’와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능력’을 보장해야만 비로소 평등을 이룰 수 있다. 성취의 자유 자체를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일은 문화를 떡잎부터 짓밟는 행위다.

한 문화집단의 성취를 향한 발걸음을 이해가 상반되는 다른 집단들의 성토에 못이겨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경제계에도 규제의 족쇄들이 하나 둘 풀리고 있는데 하물며 문화계에 족쇄가 웬말인가.

때로는 독버섯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피어나고, 때론 잡초처럼 밟히고 또 밟혀도 계속 돋아나는 것이 문화의 씨앗들이다. 잘 가꾼 정원의 꽃들로만 이뤄진 문화는 생명력이 없다.

새로운 문화는 언제나 기존의 문화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가운데 꿈틀꿈틀 일어섰다. 미래의 문화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절대로 주문제작할 수는 없다. 문화는 진화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신임 장관의 첫마디를 나는 깊이 새겨들었다. 부디 멍석을 걷는 장관이 되지 않기를 빈다.

하지만 지난 몇년 동안 아쉽게도 걷혀 있던 멍석이 하나 있기에 신임 장관에게 호소하려고 한다. 국립자연사박물관 하나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적 수치를 면하자고 지난 정부가 시작한 건립 사업이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단 한푼의 예산도 받지 못한 채 멍석 안에 말려져 있다.

과학도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아니 과학문화야말로 새로운 밀레니엄이 경험하게 될 가장 뚜렷한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밀레니엄을 마감하며 전세계의 대표적인 석학들에게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절대 다수가 생물다양성의 고갈이라고 답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국립자연사박물관에 문화계에 다양한 경험이 있는 신임 장관의 문화적 감성을 기대해 본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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