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누들누드' 양영순 "결혼하니 性환상 깨졌어요"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40분


인기만화 ‘누들누드’의 작가 양영순(29)은 결혼하고 나서 확실히 달라졌다.

우선 결혼한 대다수의 남자들처럼 몸무게가 65㎏에서 76㎏으로 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여유 또는 결혼생활의 안락함 때문일까. 그러나 그는 이를 창작의 고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혼후 일감이 많아져 밤샘 작업을 하다가 졸릴 때 뭔가 먹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 11㎏의 살은 고통의 대가라는 얘기다.

또 하나는 ‘성에 대한 상상력’.

‘누들누드’에 대한 그의 정의는 “성 판타지를 꿈꾸는 소심한 총각의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그는 결혼전에 “결혼하고 난 뒤 꿈이 아니라 현실로 된 성에 관해 과연 이전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결혼후 출간한 ‘기동이’ 단행본 등에는 대담한 상상력이 여전히 펄펄 살아있지만 성적(性的) 코드가 많이 줄었다. 대신 낚시바늘에 걸려 미인의 얼굴 가죽이 벗겨진다든지 냉장고에 보관한 예쁜 여학생의 시체가 전기코드가 뽑히는 바람에 부패한다든지 하는 엽기적 코드를 담은 작품이 많다. 또 인터넷 만화사이트인 코믹스투데이(www.comicstoday.co.kr)에서 연재하는 ‘누들 타운’에는 혀만 단련시키는 유부남용 헬스클럽을 다루는 등 ‘아저씨적’ 발상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고3 때 화실에서 알게 된 지금의 아내와 5년간의 짝사랑을 거쳐 4년간의 열애 끝에 98년 결혼했다. ‘누들누드’의 성적 코드와는 달리 그는 결혼할 때 동정이었다. 교회에 다니는 아내가 결혼전 ‘접근’을 거부했기 때문.

“(성의) 실제 상황에 대해 알고 나니까 총각 때 꿈꿔오던 호기심과 환상이 사라진 건 분명해요. 성을 수시로 접할 수 있으니까 매력이 떨어진 편이죠. 성에 대한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도 총각 땐 ‘또 한건 했구나’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아, 옛날에 그랬지’하는 식이죠.”

‘누들누드’는 ‘상상’의 성이었을 뿐 ‘실제’의 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혼한 뒤 생각해보면 많은 왜곡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성을 파고든 것은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큰 반면 정상적인 성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없기 때문이죠. ‘누들누드’도 거짓은 아니지만 또 진실도 아니예요. 어떻게 보면 저와 같이 통로가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화제가 됐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 성 자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다.

“총각시절 남동생 친구들과 술을 먹는데 한 친구가 여자와 수없이 잠자리를 같이 한 무용담을 떠벌이는 거예요. 뭐랄까, 부러움 질투 시기 등이 생기면서 내가 술값내기로 한 자리인데도 화장실 간다고 하고 그냥 튀었어요. 네가 많이 먹었으니(?) 네가 술값 내라는 심정이었지요.(웃음) 그러나 이젠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많이 해봤는데 제대로 못해봤다’는 식으로 들려요.”

상상력이 달라진 만큼 그의 성담론은 더욱 풍부해지고 구체화된 것 같았다.

“이야기만 하는 성 또는 사랑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을 자꾸 어떤 개념으로 정의하려고 하거나 번지르르한 얘기로 포장하려고 하는데 결국 성적 행동, 행위가 실제 생활에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행동이라고 해서 원조교제 같은 걸 생각하시면 안돼요. 원조교제는 성적 능력이 떨어지는 수컷이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어린 상대를 찾는 것에 불과해요. 행동하는 성이 중요하다면 그건 행위가 끝난 뒤 삶의 활력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성을 의미합니다. 말과 상상으로 느낄 수 없는 성의 진실이라고 할까요.”

‘누들누드’가 50만부 팔리면서 성공하고 난 뒤 그는 ‘폭력’을 주제로 한 학원물을 그리려고 했다. ‘성’과 아울러 ‘폭력’도 타자와의 가장 원초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지금은 더 많은 고민과 조사가 필요한 것 같아 접어두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주제다.

그래도 작품 아이디어를 구상하다보면 성적인 코드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작가 초기시절부터 하도 오랫동안 성적인 코드에 빠져 있다 보니 몸에 배인 것 같아요.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어져요. 휴대전화 만화서비스 코너에 그리는 4컷짜리 만화 캐릭터가 처음에는 ‘점’이었는데 이젠 ‘꼬리’를 달았어요. 앞으로 ‘고추’를 달게 될지도….”

사회 전반에 범람하는 성과 만화 ‘천국의 신화’에 대한 유죄 판결과 같은 성에 대한 억압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주위의 기대도 여전히 성적인 데 쏠려있다. 성적인 코드 대신 다른 코드의 작품을 그려가면 원고 담당자가 당황스러워 하며 “요즘 무슨 고민있냐”고 술을 사주기도 한다는 것. 그는 최근 ‘누들누드’ 시리즈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에 컬러를 입히고 작가의 주석을 달아놓은 ‘하드코어 누들누드 1’이라는 소장용 만화책을 냈다. 어찌보면 단순한 재판(再版)에 불과한데도 벌써 1만5000부나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넷에 가장 적합한 만화 창작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책이라는 공간적인 한계 때문에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실을 예정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상을 일러스트와 짧은 이미지로 그려내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또 3D모션 캡처 방식(배우의 연기 동작을 찍은 뒤 만화로 옮기는 방식)으로 ‘누들누드’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새로운 시도도 추진 중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최근 보고 있는 일본 만화 ‘도라에몽’을 언급했다.

“만화에서 한 컷만 빼도 흐름이 금방 어색해질 정도로 탄탄한 구성력과 연출력이 감탄스러워요. 초등학교 때 본 작품인데도 지금 다시 봐도 무척 재미있고요.”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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