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미은/사이버 여론 책임 뒤따라야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37분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 여론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역할과 영향력도 인터넷의 힘을 이용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지고 있다. 소비자들도 예전에는 제품이나 회사에 불만이 있을 때 소비자고발센터를 이용하거나 언론에 제보하는 제한된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 ‘안티사이트’를 통해 집단의 힘을 표출하고 있다. 기존의 제도권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많은 단체나 개인이 무한대의 가상공간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대중이 정보의 생산자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림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자민주주의가 실현되리라는 예측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형성되는 사이버 여론의 부작용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격의 없고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친 욕설과 인신공격, 근거 없는 비방에서 여론 조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네티즌의 감정을 건드릴 만한 내용이면 놀라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다.

정보가 그야말로 전파의 속도로 확산되는 특성을 지닌 인터넷에서는 사실의 진위 여부보다 감정적인 ‘이미지’가 대중에게 더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이버 여론의 부작용은 때로는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치명적인 사이버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괴담’이라고까지 불린다. 사이버 여론의 부작용은 인터넷과 정보 기술이 양날을 가진 칼임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을 민주적으로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개방형 구조이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오는 정보를 누구도 완벽하게 규제할 수 없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을 민주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열쇠는 바로 사이버 공간의 주인인 네티즌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론형성 과정에서 예전에는 신문 방송 등 언론이 많은 정보 중에서 신뢰성 있는 정보를 골라내 알려주는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이런 ‘문지기’역할을 할 주체가 없다. 도리어 신문과 방송이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론을 보도하는 일도 흔해졌다.

따라서 인터넷 시대의 정보 수용자는 보다 적극적인 정보의 평가자가 돼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보의 생산자로서는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이버 공간의 개방성과 익명성은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사이버 여론이 만드는 부작용의 음지가 줄어들지 않는 한 양지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효율적인 여론수렴이 이뤄지기는 힘들다.

강미은(숙명여대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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