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 입력 2000년 9월 25일 16시 23분


◇황무지에서 자라난 자매들의 불행한 삶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 한 편으로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에밀리는 《제인 에어》를 쓴 언니 샬럿과 《애그니스 그레이》를 쓴 동생 앤과 더불어 흔히 '브론테 자매'라고 불린다. 브론테 자매 가운데 제인은 비교적 단명했던 두 동생보다 오래 살았고 남긴 작품도 많으며 당시 유명한 소설가이던 개스캘 부인이 전기도 남겨서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러나 에밀리는 1848년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사적인 생활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죽기 전 7년 동안은 《폭풍의 언덕》의 집필에 매달려 있었으니, 이 작품이야말로 그녀가 생명을 바쳐 완성한 필생의 작업인 셈이다.

원래 브론테 자매의 아버지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사람으로 영국으로 오자 브런티(Brunty, 혹은 프런티)라는 멋없는 성을 브론테(Bronte)로 개명하였다. 그는 캠브리지를 다닌 후 목사가 되었으며, 몇 군데를 다니다가 결국 요크셔 지방의 호우스의 주목사가 되어 거기에 정착하였다.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다섯을 두었는데, 이 가운데 셋째가 샬럿이며, 다섯째가 에밀리, 막내가 앤이다.

이들은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별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황량한 요크셔 지방의 황무지에서 자기들끼리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 여섯 자매의 삶은 너무나 힘들고 박명하였다.

앤을 뺀 나머지 네 자매들은 잠시 목사자녀들을 받는 기숙학교에 보내졌는데, 그 기숙학교는 너무나 여건이 열악하여 제일 위의 두 언니가 일 년 만에 죽게 된다. 폐결핵과 영양실조 그리고 향수병 등이 겹친 결과였다. 두 동생은 집으로 돌아오는데, 샬럿에게는 이때의 경험이 《제인 에어》의 앞부분을 위한 재료가 되었다. 이 기숙사에서 돌아온 후 에밀리는 세 번 정도 잠시 호스를 떠났을 뿐 일생을 이곳에서 지냈던 것이다. 대개 학교 교사로 몇 군데를 다녔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곤 하였다. 말하자면 에밀리는 집을 떠나서는 견디지 못하는 그런 성품이었다. 별다른 일없이 지나가는 목사관의 단조로운 나날들, 그리고 주변의 무어 황무지의 스산한 풍경들, 이 속에서 평생을 보낸 에밀리는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보다 무언가 더욱 격렬하고 힘찬 어떤 힘이 작용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다. 일 년 동안 폐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갔지만 끝내 의사를 마다하였고, 침대에 눕기조차 거부했다. 기록에 따르면, 호스의 거실에서 '한 손으로 테이블을 기댄 채' 죽어갔다는 것이다.

브론테 집안의 유일한 아들 브랜웰은 문학과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의에 빠져 술과 마약을 과용하고 폐인이 되고 만다. 에밀리의 직접적인 사인도 그해 10월 오빠 장례식에서 독감에 걸려 회복되지 못했던 탓이다. 12월에 에밀리가 죽고, 다음해 막내 앤이 죽었으며, 유일한 생존자였던 샬럿마저 그로부터 7년 후에 사망하면서, 쓸쓸한 목사관에는 아버지 패트릭만이 외롭게 남았다.

◇영국문학의 빛나는 고전작

이처럼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다간 에밀리지만, 죽기 꼭 일 년 전인 1847년 12월 엘리스 벨이라는 필명으로 7년간 써온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을 출판함으로써 단숨에 문단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두 달 전 언니인 샬럿이 커러 벨이라는 이름으로, 동생 앤이 액튼 벨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제인 에어》와 《애그니스 그레이》를 출판해 호평받은 터라, 벨 집안의 세 작가는 누구인가가 세간의 관심거리였고, 출판사는 한술 더 떠, 이 세 작품 모두가 실은 액튼 벨이라는 한 남성작가가 쓴 것이라는 설을 흘렸다. 물론 이 모든 의문은 두 동생이 죽은 후 1850년 《폭풍의 언덕》의 재판이 나왔을 때, 샬럿이 서문을 통해 그 내막을 밝힘으로써 풀리게 된다. 이 흥미로운 서문에서 샬럿은 '여성작가라고 밝히면 괜스레 편견을 가지고 대해' 제대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남성 가명을 썼다고 밝힌다.

과연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을 보면 여성적이라고 하기엔 매우 힘차고 악마적인 어떤 에너지가 작품에 넘쳐흐른다. 이 같은 성격은 당대에 성행하던 리얼리즘 소설들, 좀더 현실의 사소한 일상사에 집중하고 좀더 친숙한 인물과 사건을 선호하는 영국 소설의 경향과는 분명 다르다. 당시 독자들의 호응과는 반대로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일종의 공포괴기물인 고딕소설로 평가절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은 의심할 여지없는 영문학의 정통고전으로 확고히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하여 한마디. 이 작품의 원제인 《워더링 하이츠》에서 '워더링'은 원래 '바람이 강하게 부는' 이라는 뜻을 가진 방언이고, 하이츠는 높은 산을 일컫는 말이다. 뜻만으로는 '폭풍의 언덕'이 정확치는 않다 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나, 작품 속의 '워더링 하이츠'는 주인공 히스클리프가 자라고 나중에 빼앗는 저택의 이름이다. 따라서 그냥 《워더링 하이츠》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진작부터 《폭풍의 언덕》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탓에 이것은 또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어버린 셈이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황량한 바람이 몰아치는 요크셔 지방의 시골저택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씨는 어느날 여행에서 돌아와 식구들 앞에 괴상하게 생긴 작은 아이 하나를 꺼내놓는다.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것을 주워왔다는 말에 부인과 아이들은 경악해 당장 그 아이를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자라난다.

딸 캐서린은 이 아이 히스클리프와 점점 가까워진다. 히스클리프는 영악해서 아들 힌들리의 미움을 받지만 캐서린과는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다정하게 지낸다. 그러나 언쇼씨가 죽고 주인이 되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무자비하게 박대한다. 그러던 어느날, 부유한 이웃 린튼 집안의 도련님 에드가와 캐서린의 약혼이 발표되자 하인 취급을 당하던 히스클리프는 말없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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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덕성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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