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인북]세계화-민족주의 대안은 생태정치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45분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 책은 ‘민족주의와 발전주의의 환상’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음모인 세계화, 이성을 부적절하게 작동시켜 온갖 갈등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민족주의 세계관(저자는 한국의 ‘공격적 민족주의’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확대함으로써 풍요가 보편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모든 유형의 발전주의적 사고, 민족중심 또는 계급중심적 사고를 운동의 핵심에 두는 좌파이념 등 근대 정치의 중심 테마들을 비판한다.

그러면 이런 정치적 모더니티의 유산들을 거부하는 저자의 ‘현실적 위상’은 어디쯤일까?

그는 ‘에코―폴리틱스(Eco―politics)’에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 전지구적 또는 우주적 정치를 위한 테마인 생태 환경문제는 현실―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적 비전의 실종으로 인해 좌절한 독자들을 흡인하기에 충분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생태정치의 구체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방향을 모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그래서 바이츠제커 식의 ‘지구정치(Erdpolitik)’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인 지향의 생태정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제시할 그의 처방이 바이츠제커 식의 개량주의보다는 근본적일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모든 근본주의적 사유가 그러하듯이, 생태정치의 전망대 위에 선 저자는 생태학적 낭만주의와 반자본주의, 계급 중심의 진보주의와 코스모폴리탄적 자유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다.

저자의 이런 복잡한 심정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저자는 개인 지향의 생태정치와 집단적 가치인 생태학적 가치를 어떻게 양립가능하게 할 것인지, 얼핏 휴머니즘의 옹호로 들리는 개인지향은 인간종 우월주의(human chauvinism)로 흐르지는 않을지, 민주주의를 대가로 치르지 않고 지구생명의 생존과 시장경제의 통제가 가능할지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적이고 숭고한 열정인 생명 사랑은 일견 지역 민족 계급, 한마디로 모든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일소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논증적이기보다는 강령적이어야 하고, 강령적인 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의분(義憤)케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선언과 시도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334쪽, 1만원

구 승 회(동국대 교수·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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