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고분 벽화

  • 입력 2000년 9월 21일 19시 01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다. 약 3만년 전에 원시인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은 1만5000년 전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꼽는다. 두 그림 모두 들소 고라니 야생마 등 사냥감을 그리고 있는데 원시인이 그렸다지만 대담한 필치 등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원시인들이 왜 이런 벽화를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그림이라는 설이다.

▷벽화의 전통은 이집트와 로마 중국 등 후대에까지 이어졌다. 종이나 캔버스 같은 미술재료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벽화미술의 압권은 역시 고분벽화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 그려진 벽화는 파라오의 권세를 보여주듯 화려함과 세련된 멋을 자랑한다. 동양에서 고분벽화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작됐으나 꽃을 피운 것은 고구려에서다. 평양과 압록강 유역에 몰려있는 고구려벽화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고구려에 고분벽화가 성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 무덤양식은 돌을 규칙적으로 쌓아 만든 석실(石室)분이다. 자연히 무덤 안에 평평한 돌벽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넣게 되어 벽화가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고분에 벽화를 그려넣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고도의 건축기술과 그림을 오래 유지시키는 벽화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고구려벽화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초기까지 전통이 이어졌다. 최근 고려말기의 학자 송은 박익 선생의 묘(경남 밀양시 소재)에서 벽화가 발견돼 화제다. 벽화의 명맥이 끊겨져 가던 마지막 시기의 것이다. 비교적 선명한 그림이 머리모양 의복 등 당시의 풍속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전해주고 있다. 이번 발견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에 있는 고구려벽화의 보존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날로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됐든 위대한 문화유산을 물려준 선조들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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