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신의 법정

  • 입력 2000년 9월 21일 10시 33분


▼<신의 법정>(Inherit the Wind, 1960)▼

감독: Stanley Kramer

출연: Spencer Tracey (Henry Drummond), Frederic March (Mathew Brady)

Gene Kelly (E.K. Hornbeck)

인간은 진화의 산물인가, 아니면 신의 피조물인가? 인류의 역사는 이미 신의 시대를 뒤로하고 이성과 과학의 시대로 이행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을 맹신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신의 시대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영화 『신의 법정』( Inherit the Wind)은 흔히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 불리는 미국의 재판을 기록한 영화이다. 1925년 3월 테네시주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의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은 테네시주 주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이다. "give me that old time religion" 장엄한 노래를 배경으로 세 사람의 신사가 경직된 얼굴로 모인다. 이어 긴장된 걸음으로 힐스보로 고등학교로 들어간다. 막 수업이 시작될 시점이다. 흑판에 원숭이 차트가 걸려 있다. "Good morning, students!" 젊은 선생이 입을 연다. 이어서 교실 뒷자리에 불청객들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Good morning, visitor!"라고 덧붙인다. "어제에 이어 오늘 수업에도 인간이 하급동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즉시 사진이 찍혀지고 불청객 일행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는 체포 영장을 제시한다. 이 학교의 생물선생, 케이츠가 의도적으로 이 법을 위반하여 기소된 것이다.

전국의 신문이 "원숭이 재판"(monkey trial) 이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대서특필 보도한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대체로 시대착오적인 법이라는 논조였다. ('monkey trial'이라는 표현은 'kangaroo court'와 함께 '엉터리 재판' 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세 차례 미합중국 대통령 후보에 입후보했던 Mathew Brady (실재인물 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 가 주 정부측 변호사로 소추업무를 맡게 된다. 냉소적인 언론인 E, K Hornbeck을 위시한 대규모의 언론이 작은 마을에 쇄도한다. 브래디는 그 지방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종교 세력과 결합하여 온 마을을 흥분의 장으로 만든다.

혼벡의 주선으로 '가망 없는 소수자의 대변인'(champion of hopeless causes)로 명성이 높은 Henry Drummond (실재인물 Clarence Darrow 1857-1938)를 피고인의 변호사로 고용한다. 브래디와 드르몬드는 옛 친구 사이로 드르몬드는 브래디의 대통령선거 운동에 적극 도왔다. 브래디는 지방의 종교세력과 결합하여 온 마을을 흥분의 장으로 만든다. 대규모의 언론단이 작은 마을에 쇄도한다. 브래디로서는 손쉬운 사건이다. 케이츠가 현형범으로 체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심과 지역사회의 여론이 모두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능숙한 변론기술을 발휘하여 케이츠의 약혼녀이자 광신 목사의 딸인 레이첼로 하여금 피고인이 무신론자라는 증언을 받아낸다. 이 지역에서 무신론자란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드르몬드는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판사도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내기에 그의 심문은 검사의 이의신청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진화론 전문가의 법정 소환을 허가하지 않자 변호인을 사임하겠노라고 위협하는 등 폭언으로 법정모욕죄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진화'라는 단어 자체가 법정에서 언급되지 못하게 하는 판사는 분명히 지역의 정서를 대변한다.

드르몬드는 고심 끝에 최후의 승부를 건다. 성경과 창조론의 전문가로 검사인 브래디를 증인으로 소환한다. 판사는 브래디에게 수락을 거절할 것을 종용하나 브래디는 기꺼이 응한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꿰뚫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드르몬드가 파놓은 논리의 함정에 걸린다. 창세기의 구절대로라면 창세의 첫 날에 태양이 정지했다. 따라서 하루가 몇 시간인지 판단할 기준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루가 스물 네 시간이 아니라 스물 다섯 시간도, 수백만 년도, 심지어는 앗시리아의 여신(Ishtar)만큼 영원한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성경 구절을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에 맞추어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진화론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은 유죄 평결을 내린다. 극성 언론의 조롱감이 될 것을 우려한 판사가 초범임을 감안하여 1백 달러 벌금이라는 지극히 가벼운 처벌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한다. 해산하는 방청객을 상대로 브래디는 벌떡 일어나 목청을 다해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예의 소신을 절규한다. 그리고는 청중들의 소음을 등에 지고 바닥에 쓰러져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장엄한 성가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Glory, Glory, 할렐루야. . . 마칭 홈."

이 영화는 실제 사건과 판결을 기초로 한 것이다. 1925년 테네시주 데이턴 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민권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문제의 법에 도전하는 데 조력할 지원자를 구하는 광고를 게재했고 이에 지방의 상인이 화답함으로써 개시된 것이다. 이 도시의 상인들은 재판이 벌어지면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영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연맹을 지지하고 나섰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인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영화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백 명의 기자들이 이 조그만 도시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 중에는 H. L. Mencken (영화의 Hornbeck)도 포함되어 있다. 반 유대 정서가 노골적인 그는 영화에서보다 더욱더 냉소적이고 악의에 찬 인간이었다. 이 재판은 미국의 법원사 전체를 통해 가장 대중의 논란이 된 사건이다. 아마도 O. J. Simpson 재판에 뒤지지 않는 여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건이었을 것이다. 진화론 세력은 비록 재판에서는 패했지만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피고인 Scopes(영화의 Cates)는 풋볼 선생이었고 실제로 진화론을 강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케이츠. 레이첼과 그녀의 아버지인 근본주의가 목사는 허구의 인물이다). 결강한 생물교사를 임시로 대리한 그는 주로 풋볼플레이에 대해서 강의했을 뿐이다. 그는 진화론에 대해 전혀 무식하기 때문에 법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문을 받지 않았고 학생들의 증언은 모두 각본에 의해 움직인 것임이 후일 밝혀졌다. 기독교 근본주의자 연합에서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 )을 검사로 지명한다. 4개의 정당을 바꾸면서 세 차례나 합중국 대통령에 도전하여 실패한 브라이언은 미국 땅에서 진화론을 추방하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미국 땅에서 술을 영구 추방하기 위한 "금주당" (dry forces)의 주역으로 1919년 수정 18조의 제정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1920년의 수정 제 19조의 제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한 때 인민당(Populist Party)의 기치 아래 대통령 입후보에 나섰던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한 경력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브라이언은 진화론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다. 그가 진화론의 교육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다원의 진화론이 니체나 스펜스(Herbert Spencer)의 추종자들에 의해 인종간의 불평등한 취급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무기로 사용할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니체의 초인사상은 타 인종에 비해 생래적으로 우수한 인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인종차별적 정서를 조장하고,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수용한 스펜스의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은 특정 사상, 이론, 종교가 자유경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우수함이 입증된 후에 빠지게 될 아집과 독선의 위험을 수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차대전이 발발한 간접적인 원인도 진화론의 영향이라고 브라이언은 믿었던 것이다.

영국의 런던 북쪽 Highgate에 유명한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는 오늘도 세계로부터 찾아온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칼 맑스가 바로 이곳에 묻혀 있다. 거대한 맑스의 석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성 참배객이 셔트를 누르기 위해 엉덩이를 걸치는 곳이 바로 스펜스의 묘석이다. 우연이긴 하나 역사의 묘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Clarence Darrow가 ACLU의 주선으로 Scopes의 주임변호인이 되고 그에 뒤지기 서러운 유능한 변호사들이 합세한다. Darrow 자신이 피고인으로 '세기의 재판'을 겪은 경험이 있다. 1912년에 뇌물수수죄로 기소되어 로스 엔젤스 법정에서 무죄의 평결을 받은 바 있다. 미국역사상 최대의 정치적 재판이다. "정부 대 대로우"(The State against Darrow) - 연인이자 열렬한 사상적 추종자였던 Mary Field의 재판 참관기록이 이 재판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다. "예수의 재판을 열면서 빌라도 총독은 '정부 대 나자렛의 목수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눈으로 보면 대로우는 무법자였다. 그가 분노한 아이다호의 광부를 대변했을 때, 그가 철도노동자의 파업의 이유를 경청하자고 했을 때 이미 정부는 그를 단죄하고 있었다. 오늘의 이 모습에 증권시장이, 대기업 사무실이 환호의 축배를 들고 있고 철도회사가, 철강협회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그를 기소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처럼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진화론의 합법성을 논증하기 위해 감정증인을 소환했으나 법원은 이에 관련된 증언을 모두 실효시켰다. 이들이 감정증인을 소환한 이유는 진화론이 성경의 창세기 구절과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할 목적이었다. 변호인 측의 주장에 의하면 단순히 진화론을 가르치는 행위를 넘어서서 창조론을 부정해야만 이 법률에 위반하는 형사범죄의 구성요건이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판사는 법률규정이 너무나 명백하므로 전문가의 감정증언은 일체 필요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일체의 증언을 불허했다. 영화에서처럼 Darrow는 실제로 Bryan을 성경의 전문가로 증언대에 올려 심문했다. 브라이언은 구약성경의 자구와 현대과학 사이에 조화를 유지해야 하는 넌센스를 연출해 내었다. 그러나 판사는 브라이언의 증언 전체를 사건의 쟁점과 무관한 것이라며 배척했다.

증언이 끝난 후에 쌍방이 유죄의 합의를 보았다. 따라서 쌍방이 최종변론의 기회를 갖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3개월 이상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최종 변론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재판이 끝난 닷새 후에 사망했다. 죽기 전에 최후변론을 출판할 것을 주선을 해 두었고, 그리하여 그의 사후에 육필 원고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영화에서 사실심 판사는 법률의 위헌성 문제를 다루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것은 판사의 재량이 아니다. 일단 위헌성 문제가 제기되면 판사는 반드시 이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것이 위헌법률심사 제도(judicial review의 특징이다. 법률이 연방헌법에 위반되는지의 문제는 연방법원에서는 단독 판사 대신 3인의 판사로 구성되는 재판부가 이를 다룬다.

모든 헌법문제가 그러하듯이 이 판결은 두 개의 헌법적 권리가 대립, 충돌한다. 먼저, 주정부는 공립학교의 교과과정의 내용을 결정할 헌법적 권리를 보유한다. 주정부가 결정한 이상 비록 교과과정의 내용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교사는 이를 준수해야만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헌법적 문제가 걸려 있다. 즉 '정교분리의 원칙'이다. 수정 제 1조는 "국교를 설정하거나 특정 종교를 우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의 테네시 주법은 암묵적으로 특정 종교의 교리를 공교육에 반영시킬 의도로 제정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테네시 대법원은 스콥스의 유죄판결을 번복했으나 진화론의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의 효력은 유지시켰다. 이 판결은 연방헌법이 아니라 테네시 주의 헌법을 근거로 한 것이었고 따라서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기회가 봉쇄되었다. 또한 스콥스의 유죄를 번복한 이유는 몹시도 기술적인 것, 즉 그가 50달러 이상의 벌금형은 배심만이 선고할 수 있는데 이를 위반하여 판사가 벌금을 선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판결이유에 덧붙여서 이렇듯 "끔찍한 사건 "(bizzare)은 "주의 평화와 권위"를 위해 또다시 법원이 재판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문제의 법률은 1967년 폐지될 때까지 테네시 주의 법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사람은 Scopes 한 사람 뿐이었다. 이 판결로 인해 전국적으로 원숭이 사냥법을 제정하려던 근본주의자들의 입법운동에 제동이 걸렸다. 바로 이듬해인 1926년에 아칸소와 미시시피, 두 주에서 유사한 법률이 제정된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테네시주 대법원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서 끔찍한 사건은 계속 발생했고 연방대법원도 두 차례나 이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되었다. 1968년 Epperson v. Arkansas 판결과 1987년의 Edwards v. Aguillard판결이다. Epperson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테네시 주법과 유사한 아칸소 주법을 위헌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이 판결로도 원숭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많은 주에서는 이 판결을 우회하는 각종 편법이 시행되었다. Edwards판결에서 문제된 루이지애너 주법이 한 예이다. 문제된 주법은 진화론을 가르칠 경우에는 반드시 "창조과학" (creation science)도 함께 가르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 법 또한 연방대법원의 위헌판결을 면치 못했다. 두 판결에서 모두 문제된 법의 제정 목적이 특정 종교의 교리를 증진시킴에 있고, 따라서 수정 제 1조의 위반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세계의 곳곳에서 아직도 원숭이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 『신의 법정』은 종교적 히스테리, 언론의 해악, 미국의 정치사와 법조사에 우뚝 선 두 거장의 빛나는 법정논쟁, 그 본질에 자리 잡은 헌법 등등 기막힌 볼거리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할 숙제를 제공해 준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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