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펜싱]김영호, 단칼에 날린 50년 그늘

  • 입력 2000년 9월 20일 23시 03분


14―14. 이제 1점만 남았다. 찌르면 ‘살고’ 찔리면 ‘죽는다’.

다 잡았다고 했던 14―11에서 김영호는 두 번이나 비스도르프의 몸통 부분을 정확히 찔렀지만 유효 부위가 아닌 곳을 찔러 득점에 실패했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마스크를 한번 벗었다 다시 쓰며 호흡을 가다듬은 김영호는 곧바로 비스도르프를 향해 검을 뻗었다. 비스도르프가 공격해 들어오는 순간 한 발짝 물러서던 김영호의 검이 ‘번쩍’ 했다. 회심의 ‘어깨 찌르기’. 마지막 일격이었다.

김영호는 마스크를 벗으며 온몸을 떨었다.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우승이었고 한국 펜싱의 ‘한’을 푸는 순간이었다.

20일 시드니 전시홀 펜싱 경기장. 남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98년 유럽챔피언 랄프 비스도르프(독일)와 맞선 김영호가 3라운드 14―14 동점에서 대망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순간은 이처럼 극적이었다.

사실 김영호는 ‘14점 징크스’가 있다는 말을 들어온 선수. 이전까지의 국제 대회에서 김영호는 14―14 동점까지 몰리면 평정심을 잃고 번번이 점수를 내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 징크스를 보여주지 않았다. 준결승에서 드미트리 체프첸코(러시아)를 15―14로 누른 데 이어 결승전에서도 또다시 15―14, 1점차로 눌러 ‘마의 14점’을 넘어선 것이다.

마의 징크스를 깨고 금메달을 딴 것은 바로 번뜩이는 작전의 승리. 플뢰레경기는 얼굴과 몸통만을 찔러야 득점이 인정되는 경기로 만약 한 선수가 팔다리 등 얼굴과 몸통 이외의 부분을 찌르면, 같은 순간 정확히 공격한 선수의 득점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날 결승에서 김영호는 하마터면 씻을 수 없는 한을 품을 뻔했다. 14―11로 3점을 앞서가다 내리 3포인트를 내준 것. 위기였다.

그러나 김영호는 이 순간 ‘최후의 작전’을 세웠다. 김영호는 준결승에서 스피드가 떨어지는 체프첸코를 맞아 찌르기로 들어오는 상대를 칼로 막아내고 되찌르는 전술을 구사해 승리를 안았다. 하지만 결승상대인 비스도르프의 스피드가 만만치 않았다. 운명의 시간. 작전을 바꿨다. 검을 들고 견제하다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그때 역습을 한다는 것. 딱 한번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감행했고 그대로 적중했다.

<시드니〓주성원기자>swon@donga.com

▼관련기사▼
대표 10년째 '고독한 검객' 김영호
김영호 한마디 "비스도르프 대책 있었다"
펜싱 첫金 김영호선수부인 "감격의 눈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