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달라이라마 방한 왜 안되나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14분


11월16일로 예정되어 있는 티베트 불교지도자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둘러싸고 그를 초청한 불교계와 외교통상부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달라이라마 입국에 대해 ‘적극 검토’라는 입장을 보여온 외교부가 돌연 태도를 바꿔 ‘시기를 재고해달라’고 방한 준비위원회측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의 방한을 전후해 주룽지 중국총리가 서울에 오는 등 외교일정상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종교계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달라이라마 방한 준비위원회’는 엊그제 공식 발족식을 갖고 계획대로 추진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달라이라마는 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종교지도자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정치 인사’이긴 하지만 세계를 순회하면서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인에게 불교의 자비와 영적인 세계를 알리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방한은 전에도 추진됐으나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의식한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 외교부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도 얼마전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가 “달라이라마가 한국에 온다고 해서 양국이 단교까지야 가지 않겠지만…”이라는 위협성 강경 발언에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그러나 방한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은 외교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가 방문했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가 찾은 세계 50여개국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과 국교를 맺은 나라였다. 그것도 개인 자격이 아닌 국가나 의회의 초청에 따른 공식 방문이 많았다.

이번 한국 방문은 순수 민간 차원에서 추진중이다. 내한 일정도 강연 등 종교 행사로만 짜여져 있다. 정부가 이런 ‘제한적인’ 방문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중국에 너무 ‘저자세’가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익 차원에서 시기가 나쁘다는 정부 주장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티베트 문제에 워낙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외교부가 방한 준비위원회에 ‘협조’를 구한 방식은 당당하지 못하고 따라서 주장의 설득력도 떨어진다. 별도의 대안 제시없이 막연히 ‘시기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말대로라면 이번은 안돼도 다음번엔 입국허가를 내준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만 국한되는 문제인지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의 11월 방한은 성사되어야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를 보고 싶어하고 달라이라마 또한 한국 방문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