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윤기/신화를 실현하는 과학

  • 입력 2000년 9월 20일 18시 36분


며칠 전, 한 일간지 기자와 첫 인사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가 나에게 건네준 명함을 다시 읽어 보았다. 명함에 찍힌 것 중에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여 읽는 것은 전자우편 주소다. 그 신문기자의 전자우편 주소의 첫머리는 ‘아르고스 애트(argos@)’였다. 놀랍게도 ‘아르고스’였다.

아르고스가 누구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르고스는 여럿이다. 그 중 셋만 소개해 보겠다. 그러면 그 신문기자의 의도는 백일하에 드러난다.

아르고스는 눈이 백 개나 되는 괴인(怪人)의 이름이다. 이 괴인은 잠을 자지 않는다. 백 개의 눈을 한꺼번에 감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이오라는 여자와 헛짓을 하다가 정처(正妻) 헤라가 들이닥치자, 애인 이오의 몸을 소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자 헤라가, 백 개의 눈을 한꺼번에 감는 법이 없는 아르고스로 하여금 소를 감시하게 한다.

아르고스는 ‘감시자’다. 그런데 이 아르고스가 꾀돌이 신 헤르메스 손에 죽음을 당한다. 헤르메스는 ‘카루케이온(karukeion)’이라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신이다. ‘카루케이온’을 영어로 풀면 ‘전령의 지팡이(herald’s staff)’가 된다. 신문의 제명(題名)에 ‘헤럴드’가 많은 것은 신문이 사건과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아르고스는 죽었지만, 아르고스의 눈은 죽지 않는다. 헤라 여신이 그 눈을 모두 뽑아 공작의 꼬리에다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공작의 꼬리에 달린 눈은 지금 이 시각에도, 잠드는 일이 없이 세상을 감시한다.

아르고스는 신화 시대 최초의 쾌속선 ‘아르고호’를 지은 목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아르고호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영웅들은 ‘아르고나투테스(아르고 원정대원들)’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이 아르고스는 영웅들을 미지의 세계로 보내는 수단을 제작한 목수인 것이다. 이 때의 아르고스는 ‘영웅들을 보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아주 빠른 배를 지어낸 사람’이다.

아르고스는 트로이 전쟁과 바다 위에서의 방황으로 20년 동안이나 집을 떠나 있던 영웅 오디세우스의 노충견(老忠犬) 이름이기도 하다. 이 충견은 거지로 변장하고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이 아르고스는 ‘끝까지 살아서 진상, 혹은 진실을 알아보는 개’이다.

그 신문기자는 얼마나 눈이 밝은가? 그는 신화로부터 ‘아르고스’, 이 넉 자를 빌려 자신의 소임을 설명하고, 포부를 밝히고, 미래를 예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화는 포괄적인 상징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신화의 언어를 빌리면, 몇 개의 단어로 아주 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퀴베르네테스(Cybernetes)’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는, ‘키잡이(steersman)’가 내장돼 있는 로봇이다. 20세기 초 인공두뇌학자들은 이 단어를 ‘인공두뇌학’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것이 바로 ‘사이버네틱스(인공두뇌학)’이다. ‘사이버(Cyber)’라는 말이 없으면 이야기가 안되는 시대를 연 것은 신화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는 ‘풍요의 뿔’이다. 이 풍요의 뿔은 비는 법이 없다. 꺼내면 그만큼 또 차기 때문이다. 신화에 왜 이런 뿔이 등장하겠는가? 가난한 사람의, ‘아무리 퍼내어도 비지 않는 쌀단지 꿈꾸기’, 우리 민담에도 등장하는 화수분 단지의 꿈이 아니겠는가? ‘케스토스 히마스’,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차고 다니는 허리띠다. 이 허리띠를 보고도 아프로디테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할 수 있는 남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비아그라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 첨단과학의 시대에 웬 신화인가 하고 묻는다. 신화는 모듬살이가 꾸는 꿈이다. 어느 나라의 신화가 되었든, 그 나라의 신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원망(願望)이 고스란히 투사돼 있다.

과학은 그 꿈을 실현시키는 힘이다. 사람들의 꿈을 읽지 않은 과학이 무슨 소용인가?

마르크스는 ‘신화는 상상력을 절묘하게 부려, 자연을 형상화하거나 자연의 정복을 꾀한다’고 주장한다. 유물론자 마르크스에게까지도 과학사는 과학의 ‘신화 따라잡기’ 역사다.

이윤기(소설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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