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생과 사의 선택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37분


요즘 중국에서는 ‘생과 사의 선택(生死抉擇)’이란 영화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상하이 일원에서 1000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베이징에서도 화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한 도시의 시장이 자신의 출세를 도와준 선배와 부인에게까지 사정의 칼을 들이대는 과정을 그린 작가 장핑(張平)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 한다. 반(反)부패 소재의 영화여서인지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도 “공복(公僕)의 교재가 될 만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중국에서 왜 인기인가.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추구과정에서 겪고 보아온 현실과 영화내용이 부합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그럴 듯하다. 중국인이 느끼듯 중국당국도 ‘반부패’는 숙제인 듯싶다. 14일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이었던 청커제(成克杰)를 최종심 선고 직후 사형시켰다. 그는 광시(廣西) 좡(壯)족자치구 주석이었던 92∼98년에 각종 이권에 개입해 2900만위안(약 37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이미 하급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중국당국이 국가지도자급 관리를 수뢰죄로 전격 처형한 것은 부패척결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이런 단호한 자세가 중국에서 처음은 아니다. 주룽지(朱鎔基)총리도 98년 3월 부패와의 싸움을 선언하며 취임했다. 그는 “내 것을 포함해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고까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검찰이 올해 8월까지 적발한 부패 사건은 2만3000건이나 되며, 밀수사건 ‘샤먼(厦門)스캔들’에는 장차관급 관리 4명을 포함한 고위관리 100명 이상이 연루됐다고 한다.

▷그러나 부패 사슬 끊기가 어찌 중국만의 일일까. 대만은 천수이볜(陳水扁)총통 취임이후 검찰 고위인사 17명을 완전교체하며 국회의원 2명을 뇌물혐의로 기소했고, 타이난(臺南)시장을 구속했다. 공직자에 대한 공격적 사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도 정권교체를 계기로 전현직 경찰간부 수십명을 구속하는 등 부패구조 청산작업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부패 처리에 더 엄격히 나설 필요가 있다. 최근 민간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의 국제청렴도 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순위는 90개국 중 48위였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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