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증기금 사건' 왜 비켜가나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09분


올 추석 연휴의 화제는 단연 ‘대출 사기극’일 것이다. 중소기업 대표가 단지 ‘배경’을 과시한 데 넘어가 은행 지점장이 본점도 모르게 수백억원을 대출해 주었다니 귀성길이나 고향집에서 이 만한 화제도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한 은행원은 검찰과 은행측의 조사결과를 가리켜 ‘10만 은행원을 웃게 만든 촌극’이라고 했을까.

엊그제 검찰이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나 의혹이 가시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불법대출 과정의 외압 의혹, 본점 관계자의 영향력 행사 여부, 불법대출 동기와 자금의 사용처 등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기 때문이다. 외압 여부는 고사하고 곳곳에 본점이 개입한 흔적이 나타났는데도 검찰은 이를 덮어버렸다.

특히 검찰이 신용보증기금 사건에 대해선 아예 수사의지도 보이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보증기금 사건과 한빛은행 사건은 별개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빛은행 사건의 주역인 중소기업 대표가 보증기금에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대출보증을 받으려 한 게 이 사건의 핵심이다. 요컨대 사건의 성격과 주요 관련자가 같다.

그런데도 검찰이 보증기금 사건은 별개라며 비켜가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의 경우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아주 구체적으로 제기됐고 그만큼 폭발력을 안고 있다는 검찰 나름의 판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서울지검은 한빛은행 사건 관련자를 조사하면서 신용보증기금 사건도 함께 수사할 수 있었으나 이를 미뤄놓았다가 뒤늦게 ‘보증기금 사건은 서울지검 본청이 아니라 문제의 지점장을 수배한 동부지청에서 수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사건을 파헤치기보다는 덮고 가려는 검찰의 속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본다.

검찰은 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이 출두하면 본격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그 전에라도 얼마든지 외압의혹을 규명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대출보증을 거부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속인 사직동팀의 보복성 조사가 있었고 권력실세가 직접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었다는 전지점장의 주장이 상당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보증기금 전현직 임원들은 사건 당시 이사장이 지점장의 사표를 강요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전지점장의 출신 대학 동창회에선 이 사건에 권력실세가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검찰은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는 것이 강한 정부를 뒷받침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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