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약분업 한달, 정착까진 아직 먼길

  • 입력 2000년 8월 30일 18시 48분


충남 지역 한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 B씨(30). 요즘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꺼낸다. “과거에는 하루 평균 30명 가량 진료를 했지만 요즘엔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이 부쩍 줄었어요. 10명이나 될까.”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헤매다 오히려 병이 날 지경에 처한 나이든 환자들이 아예 보건소를 찾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

30일 의약분업이 본격 실시된 지 한달째로 접어들면서 약물 오남용이 줄어드는 등 일부 긍정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지만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보건소 또는 의원과 약국이 1, 2개 정도만 있는 읍 면에서는 한군데라도 임시휴업이나 폐업을 하면 주민들의 불편은 극심해진다.

▼약 공급 여전히 미흡▼

서울 중랑구 묵동에서 9평 짜리 동네약국을 운영하는 고모씨(32)는 도매상에 약 주문을 하면 10품목 중 3, 4품목만 배달된다고 하소연. “도매상에 연락하면 약이 없다고 한다. 제약회사에서 도매상에 담보나 현금을 요구하고 도매상은 다시 약국에 현금을 요구하는 관행이 뿌리를 내렸다. 특히 H사의 약품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다국적 유통회사가 공급을 전담하며 횡포를 부리고 있다.”

더욱이 약국은 비싼 저빈도 처방약을 구입하길 꺼려하고 있다. 괜히 구입을 해 놓아도 언제 팔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처방전을 들고 약을 찾아 헤매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종합병원 앞 문전약국은 어느 정도 해소됐으나 동네약국 및 지방의 약국에서는 일반화돼 있다.

약국이 재고 처리를 위해 약을 주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서구 내과 개원의 박형근(朴亨根)씨는 “처방전을 내면 약국에서 이런 약을 쓰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공중보건의 B씨는 “나이든 환자들의 불편을 감안해 무슨 약이 있느냐를 묻고 처방전을 써야 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보건복지부는 각 지역별로 택배시스템을 구축해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30분 안에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택배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고 구축돼 있더라도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진료비 상승 등 부작용▼

종합병원과 병원급의 경우 환자 본인부담금이 종전의 50%와 45%에서 30%로 줄어들면서 진료비가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고혈압 당뇨 환자 등이 진료비 혜택을 보고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

그러나 동네의원의 진료비는 높아져 환자들의 원성이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감기 환자가 본인부담금 3200원만 내면 진찰받고 주사를 한 대 맞고 약을 하루치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 하에서는 초진료 8400원 처방료 2800원을 포함해 1만2000원 한도에서 본인부담금을 2200원을 내도록 돼 있고 그 이상일 경우 30%를 내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진찰료와 처방료를 합쳐 1만2000원을 넘기려 하는 동네의원 의사들이 많다는 것. 이럴 경우 환자 입장에선 4000∼5000원 정도로 부담이 늘어난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의 비밀이 공개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경기 용인의 한 정신과 의사의 말. “남편 몰래 치료를 받아온 환자도 있는데 약국 등을 통해 알려질 우려가 많습니다.”

그는 정신적 요인으로 두통 위장병 등이 온 신체화장애 환자를 돌보면서 환자에게 플라시보(가짜약) 효과 차원에서 소화제를 주었는데 이를 약사가 환자에게 말해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약국이 1, 2개 밖에 없는 읍 면 단위의 경우 약국이 문을 닫게 되면 지방자치단체가 일시적으로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지정해야 하나 쉽지 않고 약 구비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의원도 문을 닫아야 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의약분업 정착되나▼

약국의 약물 오남용, 병의원에서의 약물 오남용 등이 어느 정도 규제되고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하고 있다. 또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처방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치료 이전에 예방을 하려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

그러나 실행주체인 의약계는 아직도 고칠점이 많다고 말한다. 의사들은 우선 환자에게 처방전을 주고 약을 사 먹으라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담합은 아니더라도 협력 약국, 또는 조제 전문 약국, 특정 질환 전문 조제 약국 등을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는 것.

지역의약분업 협력위원회가 즉시 가동돼 최소한의 의약품이 약국에 비치될 수 있도록 의료계가 협력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약사측도 “보험수가를 한달에 한번 신청하도록 돼 있어 현금으로 약을 사 놓고 돈이 늦게 입금되기 때문에 흑자도산이 생기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정용관·김준석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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