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심규선/땅에 떨어진 日 기업윤리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44분


‘미쓰비시 자동차가 잘못된 길을 달려왔다.’

요즘 일본은 미쓰비시 자동차가 소비자의 결함 신고(클레임)를 은폐해온 사건으로 연일 시끄럽다. 미쓰비시에 인정사정 없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쓰비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그룹 중의 하나여서 그만큼 일본인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고 있다. 미쓰비시를 비난하면서 사용되는 ‘장기간’ ‘조직적’이라는 표현에 일본인의 분노가 응축되어 있다.

자동차 회사는 클레임이 들어오면 리콜(무상수리)을 실시하고 그 사실을 운수성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미쓰비시 자동차는 이중장부를 써가며 클레임 수를 줄였다.

은폐작업에 한두 사람이 관여한 것도 아니다. 중역까지도 “클레임이 많으면 기업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다”며 이를 방조했다. 은폐를 해온 기간도 거의 30여년이 된다. 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이번 사건이 표면화된 것도 사법당국이나 운수성의 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제보를 했기 때문에 은폐사실이 드러났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자 경찰은 27일 전격적으로 회사사무실과 중역들의 가택수사를 실시했다. 예상외로 빠른 수사착수였다. 운수성도 내달 조사결과를 토대로 미쓰비시 자동차를 형사고발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사장 등 간부진의 퇴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발빠르게 수사에 착수한 배경에는 일본 경제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 깔려 있다.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의 식중독사건에서 보듯 최근 일본기업의 최대 자랑거리인 ‘장인정신’이 희박해지고 있다. 여기에 기업윤리마저 퇴조하면 일본 경제계의 앞날은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일본 수사당국이 미쓰비시를 압박하는 것은 흔들리는 경제계를 바로잡아 보려는 나름대로의 자구책인 셈이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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