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두원/'퇴출 벤처' 잠재력 흡수를

  • 입력 2000년 8월 28일 18시 50분


경제위기 이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벤처기업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사이에 많은 수의 젊은 기업이 탄생하였으며, 이들의 활동은 그동안 경직돼 있던 한국경제에 많은 활력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고급인력과 자금을 일부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던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M&A 활성화로 기술 살려야▼

벤처 창업열풍은 경제위기로 인해 파생된 순기능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국경제의 큰 문제점의 하나였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년여의 기간은 경제위기 이후 기존의 경제질서가 와해되면서 새로운 구조가 정착되는 과도기였으며 근래 코스닥시장의 침체에서도 나타나듯이 현재와 같은 창업열풍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진입장벽을 낮춰 창업을 용이하게 만드는 작업과 동시에 퇴출시장의 활성화를 고려해야 할 때다.

퇴출시장의 활성화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가까운 장래에 많은 신생기업들이 퇴출압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1만개에 가까운 벤처기업이 탄생하였으며 이러한 창업열풍에 힘입어 현재 신생법인 수와 부도법인 수의 비율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정도의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수의 신생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으며 이들은 이제 곧 퇴출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 기존의 퇴출제도로는 이들의 퇴출을 효과적으로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도는 기업회생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 예상되는 벤처기업 퇴출의 경우 기술과 경쟁력이 부족해서 퇴출압력을 받기보다는 관리능력의 부재 등과 같은 경험부족과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등으로 인하여 퇴출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업들을 단순히 청산시킨다거나 또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기존의 회생제도에 맡길 경우 이들 기업에 내재한 기술과 잠재력 등이 사장될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이들 기업의 내재가치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효과적인 퇴출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이들의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먼저 기존 관 주도의 기업회생제도보다는 민간주도의 회생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미 선진국에는 활성화돼 있는 기업회생 전문회사의 활동이 시급히 시장에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외국기업에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벤처기업의 퇴로와 관련해 가장 효과적인 대안 중 하나는 아마도 인수합병이 될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벤처기업의 경우 퇴출압력을 받을지언정 어느 정도의 기술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런 한계 벤처기업을 기존의 대기업이나 또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다른 벤처기업이 인수합병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아질 것이며, 이러한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를 돕기 위한 각종 제도적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실패 벤처인도 잠재적 사업가▼

그러나 제도적 장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퇴출기업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의 변화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젊은 벤처인들을 다분히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들은 앞으로 예상되는 많은 벤처기업의 퇴출을 그리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벤처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사회적으로 팽배할 때 최악의 경우 지난 2년간의 창업열풍이 단지 일과성 해프닝으로 그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많은 퇴출 벤처인들을 사업 실패자로 보기보다는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큰 경험을 축적한 잠재적인 사업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 이들을 위하여 다양한 퇴로를 열어주었을 때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동적인 경쟁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두원(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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