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푸틴의 '강성 러시아'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38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월 취임식에서 ‘강성 러시아’를 주창했다. 다양한 목표와 내용이었지만 군사분야에서는 해군력의 위상 회복이 우선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3월 선거에서 승리한 뒤 열흘 만에 북해함대를 방문, 핵잠수함에 머물며 해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었다. 이와 함께 해군은 지난달 러시아 유일의 항공모함 쿠즈네초프제독호와 호위함으로 지중해 함대를 재건해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해군은 제정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대제에 의해 창설됐다. 304년 전의 일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러시아 해군은 구 소련 당시 국제적 영향력의 배경이 되는 막강한 힘을 가졌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은 구 소련의 흑해함대가 우크라이나와 분할되면서 크게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물론 러시아 함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재정적 문제 때문이었다. 구 소련 지중해 함대도 1990년 심각한 재정난으로 폐쇄됐었다.

▷러시아는 흑해, 발트, 극동, 북해의 4대 함대 중 북해함대를 중시한다. 특히 북해함대가 관할하는 러시아 북서부와 노르웨이 북단 사이의 해역 바렌츠해를 전략적 요지로 여긴다. 바렌츠해는 북해함대가 북대서양으로 나오는 길목인 까닭이다. 러시아로서는 북극해의 천연자원 보호와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전략적 균형을 위해 최신예 함정과 잠수함을 배치하는 게 당연하다. 바렌츠해는 그래서 러시아와 서방의 첩보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 바렌츠해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러시아의 최신예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한 지 9일 만에 승무원 11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침몰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고처리에는 여러 의문점이 제기된다. 러시아는 사고가 난 지 이틀 뒤에 이를 밝혔고, 구조에도 늑장 대응했으며, 외국의 지원을 거부하다 사실상 구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핵미사일 등 군사 장비의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내 비판대로 군 조직의 위기관리 무능력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무엇보다도 침몰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야겠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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