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손석복/급변하는 중국 제대로 보자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0분


사업차 오랜만에 중국을 다녀왔다. 2년 전 현지에서 살면서 느꼈던 베이징(北京)과는 너무도 달랐다. 김포의 10배가 넘는다는 공항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공항 직원들의 복장과 표정, 형형색색의 광고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홍보하는 간판을 보면서 2년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하늘을 찌를 듯한 대형 신축 건물들은 건물마다 독특한 색으로 멋을 부려 주변의 녹색공원과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입간판은 물론 시내버스 지하철에 차고 넘치는 .com 광고, 90년대 말 삐삐 만큼이나 일반화된 휴대전화, 배꼽티에 물들인 형형색색의 머리, 원색의 의상.

외형만 변한 게 아니었다. 만난 사람의 3분의 1 가량은 담배를 끊었다. 재떨이를 볼 수 없는 사무실, 금연장소 표시 등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상당수가 영어를 구사했다. 초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유치원생들 사이에 불고 있는 영어와 컴퓨터 과외열풍과 텔레비전 만 켜면 볼 수 있는 건강관련 프로그램, 홈쇼핑 그리고 외국영화. 필자도 약속이 없는 저녁엔 호텔 방에서 척 노리스와 캐빈 퀴클리가 열연한 텍사스 레인저를 즐겨 보곤 했다.

늦어도 금년 말로 예상되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의 대응 방안, 특히 미국의 시설 장비 기술의 독점을 어떻게 피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2008년 올림픽도 미국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화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이들의 외형적인 변화가 내면적인 변화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는 확실치 않다. 정말 모를 사람들이고 모를 국가이다.

이들의 한국관도 많이 변해 있었다. 한마디로 과거에는 배워야 할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봉’으로 보고 있다. ‘거짓말쟁이’라는 시각도 만만찮았다.

중국에도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곳이 있다. 베이징의 중관촌이 바로 그곳. 이 지역 사람들은 한국사람 알기를 우습게 안다. 만만디(慢慢的)로 버티면 성질 급한 한국 사업가들은 모두 나가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 시설이라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향서나 계약서를 원하는 대로 교환해 주고 실리만 챙겨라. 한국 내에서의 사정, 즉 주가조작이나 투자유치 문제 때문에 성급할 수밖에 없으니 중국에서 아무리 손해를 봐도 이미 한국에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니 빼먹지 못하면 바보다.

한국 굴지의 인터넷 회사가 인터넷 사업과 무관한 가구회사와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실이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것을 봐라. 같은 이치다. 젊은 사람들이 툭하면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자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믿지 말아라. 보도자료만 주면 액면 그대로 후하게 보도하는 한국의 신문도 믿어서는 안된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대충 이런 식이다.

중국은 정말 많이 변했다. 그런데도 한국사람들은 중국이 변한 줄 모른다. 아직도 2∼3년 전처럼 한국을 배우겠다며 우리를 뒤쫓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최근에 일어난 마늘분쟁을 많이 언급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한국이 무모하게 대들었다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중국을 우습게 보는 관행을 고치지 않고서는 앞으로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손석복(한국정보기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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