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강수돌/삶의질 향상에 앞서가는 신문을

  • 입력 2000년 8월 11일 15시 48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2명당 1명이 쓰고 있어 세계 6위를 자랑하나 교통사고 사망률이나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지표들이 삶의 질 을 측정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의 삶의 질이 어떠한가를 추정할 수 있다.

휴대전화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졌음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전자파나 소음 등 공해가 증대했음을 뜻한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 평균의 두배로 선두그룹에 드는 것은 한편으로 자가용 보유율과 공간적 이동성이 높아졌음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공격성과 조급성, 생태적 파괴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또 제조업 노동자의 주당 실노동시간은 50시간으로 법정 44시간보다 6시간 많으며 일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8∼10시간 더 많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임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상대적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마침내 시간주권을 상실하고 일중독에 빠지거나 많은 산업재해에 시달림을 뜻한다.

이를 종합하면 이렇다.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한 결과로 개인용 컴퓨터나 자동차, 휴대전화 등 삶의 양 측면에서는 놀랄 만한 성취를 이뤘으나 건강이나 안전, 삶의 여유와 인간성의 실현, 공동체와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 등 삶의 질 측면에서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삶의 질도 저절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삶의 양을 늘려오는 과정이 곧 삶의 질을 파괴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다는 점, 이것이 핵심이다. 사실 우리가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도 더불어 건강하고 여유롭게 살기 위한 것, 즉 삶의 질 향상 때문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삶의 질을 생각하는 개인 제도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언론은 이런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

이런 측면에서 5일자 ‘동아광장’에서 사람이 아니라 경제의 운용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신선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 신선했던 기사는 ‘근로시간 단축, 결국 기업도 이익’이라는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관한 보도였다. 물론 보고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단기적으로는 인건비 증가로 이어지나 장기적으로는 경영 혁신과 근로의욕 증진, 경영시스템의 선진화 등 경쟁력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솔직히 필자는 경쟁력 향상을 전제로 하는 삶의 질 향상 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한계는 부딪히면서 넘어야 한다. 혹 넘지 못해도 좋다. 그러나 처음부터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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