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재준/예술과 경제는 한집안 두가족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27분


경제부총리를 지낸 분의 자녀 교육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이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자녀들에게도 근검절약을 강조하던 분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온 가족이 레스토랑에 가서 양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사람들이 물었더니 어렸을 때부터 국제 문화적 소양을 갖춰 둬야 나중에 커서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때 불편함이 없을 거라는 답이었다. 과연 그 자제들은 외국의 일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사회적으로도 크게 활동하고 있다. 사실 외국사람과 협상을 하거나 상담을 할 때 나이프와 포크의 쓰는 순서, 에티켓 등에 신경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의사전달에 전념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화(文化)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아니면 문화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필자가 자주 드는 한 사례가 있다. 허시혼(1899∼1981)이라는 뉴욕 빈민가 출신의 유대인 소년은 13세 때 학업을 중단하고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마침내 광산을 가진 큰 자산가가 되었다. 문화적 소양은커녕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히 사게 된 판화 2점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림은 평생에 걸친 그의 열정적 사랑의 대상이 되어 40년에 걸쳐 6000점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을 수집했다. 만년에 그의 콜렉터로서의 명성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그의 소장품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경합에서 잘 입증됐다. 마침내 존슨대통령의 설득으로 그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내의 허시혼 미술관 기공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인터넷시대엔 관계 더 밀점▼

우리는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인터넷 경제에서 문화예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멀티미디어이다. 새로운 소비자들은 책과 활자로 대표되는 텍스트보다는 시각적 이미지를 선호한다. 현대 경제는 감각적이고 조급한 이런 소비자들의 시대인 것이다. 과거에는 생산자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결정하는 데로 따라가야 한다. 아니면 도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정보를 눈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시각예술은 문화산업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순수회화와 조소를 비롯한 상업적 성격의 그래픽, 패션디자인 등 응용 예술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이런 분야들은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각종 제품의 시각적 세련성에 직접, 간접적으로 큰 영향이 있는데도 그 경제적 영향력을 간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한 음악, 연극, 무용 등 공연 예술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경제력 못 미치는 문화수준▼

경제성장과 문화예술의 인과관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문화의 소비가 커지는 패턴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경제력이 커지면 낮은 문화수준이 경제적 도약의 병목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 수준이 높은 나라가 노벨상을 받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의 문화 수준은 우리 경제력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질보다 양을 강조하고 무조건 빨리 하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외국에 살다가 최근 귀국한 대학 동창은 골프와 폭탄주가 한국 비즈니스맨의 유일한 오락인 것 같다고 한탄하곤 한다.

다양한 문화 예술적 취미와 소양 없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문화인이 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 익힌 지식과 감각이 중요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림을 보는 안목이 얼마나 사업에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들은 건축가 미술가 무용가와 교류하면서 많은 창조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문화생활을 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을 자주 본다. 조계산 선암사 앞 찻집에서 만난 한 다인(茶人)은 이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렇다면 하루에 TV는 몇 시간이나 보세요?”라고 반문한다고 한다.

김재준(국민대 교수·경제학·문화가이드 웹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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