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가는 장관 오는 장관

  • 입력 2000년 8월 4일 20시 20분


다음 주일이면 우리는 또다시 한 무리의 나가는 장관과 들어오는 장관을 보게 될 모양이다. 언제 적부터 거론되던 개각인지 그 말머리를 찾기조차 까마득한 느낌이지만 어쨌든 새경제팀의 등장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개각이 임박했다고 하니까 금융가의 반응은 엉뚱하게도 ‘바꾸면 달라지나?’가 주류를 이룬다. 현 경제팀의 잔류를 바라는 애정의 표현이라기보다 새로 들어설 팀에 대한 빈정거림성이 더 강하다. 누가 한들 또 저희들끼리 치고 박고 주도권 다툼이나 벌이다가 불화설이 어떻고 개혁 피로감이 어떻고 하는 가운데 시장은 표류하고, 그리고 그때쯤 다시 개각설이 등장하고, 뭐 그 순서에서 크게 벗어나겠느냐는 그런 표정들이다.

이헌재장관은 퇴임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차라리 면직되는 것을 내심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금감위원장에서 재정경제부장관으로 신분이 격상되면서 나타난 주변의 변화가 그에게는 학을 뗄 만큼 고통스러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사나운 개 콧등 성할 날 없다’는 속담의 비유가 당사자들에게는 다소 불쾌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개성 강한 사람들이 동시대에 경제팀을 구성하다 보니까 서로 상대 콧등에 상처 입히지 않고 지낸 날이 드물 정도로 정부과천청사는 시끄러웠다.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배석한 아랫사람들 앞에서 듣기 거북한 언쟁이 예사로 벌어졌고 그래서 어떤 때는 안건이 심의조차 안된 상태로 물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간 이견이란 것이 건전한 정책적 견해 차이라기보다 행정고시 선후배들간에 정부 직급상 서열이 역전되면서 벌어진 얄팍한 자존심 대결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싸움은 원초적으로 쉽게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제정책이 혼선을 빚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고 예민한 금융시장이 그 징표들을 놓치기 바란다면 과욕이다. 불행한 것은 그 싸움의 당사자들 가운데 이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이번 개각에서 다시 자리만 바꿔 재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팀이 실패했기 때문에 바꾸는 것이라면 그들에게 과연 얼마나 힘을 실어 주었느냐 하는 것도 따져 볼 문제다. 김대중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실무 대통령답게 경제 문제를 챙겨 나갔다. 급기야 6월6일 현충일 추도사에서는 “선두에 서서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금융시장은 제2위기설에서 막 벗어난 상황이었고 현대그룹사태도 안정을 되찾아 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경상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선 때였기 때문에 이 선언은 의아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부터 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금시장에서 이장관의 말발이 먹혀들지 않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경제장관에게 시장을 다스릴 힘을 몰아주어야 할 시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이들의 존재를 시장 앞에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선두에 섰던’ 임명권자는 ‘왜소해진 장관’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현 경제팀을 무력하게 만든 또 다른 요인 하나는 정치권의 표독스러운 이기주의가 아닐까. 4·13총선을 앞둔 여당이 연초부터 경제 부처에 반개혁적 주문을 쏟아 놓았던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일이다. 은행구조조정 투신부실 같은 큰 숙제들은 슬그머니 뒤로 미뤄졌고 개혁 법안들은 일제히 국회에서 비토됐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권은 태도를 바꿔 개혁 부진의 책임이 흡사 경제팀에만 있는 것처럼 원색적 용어로 경제 관료들을 공격했다. 시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치 실세들로부터 난타 당한 경제장관이 그 시장을 상대로 얼마나 소신 있게 금융정책을 펴 나갈 수 있었을까.

외환위기 당시 수렁에 빠졌던 경제를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만든 것은 분명히 현 경제팀의 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가가 긍정적이지 못한 데는 바로 그런 저런 이유들이 있었다. 경제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환란 이후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지금부터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때는 바야흐로 집권 후반기, 레임덕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경제팀 운용 방식이 고쳐지지 않은 채 사람만 바뀌었을 때 ‘실패한 경제 관료’ 때문에 ‘실패한 정권’이 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규민 논설위원>yum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