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시골 들쥐 '프레드릭'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52분


<7> 프레드릭

저는 프레드릭이에요. 시골집 돌담 안에 사는 평범한 들쥐랍니다. 아, ‘평범한’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겠군요.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아주 특별한 들쥐, 예술가니까요.

제 이야기는 ‘개미와 배짱이’랑 비슷하게 시작됩니다. 다들 겨울을 대비해서 열심히 먹을거리를 나르는 동안 저는 그저 눈 감고 졸기만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배짱이와는 달라요. 그냥 혼자 편히 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춥고 어두운 겨울 동안 가족에게 풀어놓아 줄 빛과 색깔과 말들을 열심히 모으고 있는 거랍니다. 다른 가족도 개미처럼 저를 매정하게 쫓아버리지 않아요. 제 얘기를 열심히 듣고 나서 행복해하고, 제가 ‘시인’인 걸 인정해 준답니다. 그래요, 저는 예술가입니다. 저를 만든 레오 리오니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크면 예술가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군요. 그래서 경제학박사이면서도 글 그림 조각에 모두 능통한 예술가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답니다. 이 아저씨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해석을 내리는 그림책을 여러 권 만들었는데, 그 중 예술가편이 바로 저예요. 어쩌면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바로 리오니 아저씨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어린이책은, 결국 자서전이다”라고 말했다니 말이에요.

제 이야기를 잘 뜯어 보면, 예술가가 되는 일이 어떤 건지 아실 거예요. 무엇보다도 ‘쓸모없는 녀석!’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눈초리가 옆에 있지요. 하지만 예술가는 배를 채우는 일 외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눈초리를 받아넘길 수 있어요. 또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세상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아 두느라고 가장 늦게 따뜻한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게 예술가랍니다. 그런 다음 다른 들쥐들의 뱃속과 머릿속이 텅 비어갈 때, 환한 햇빛과 아름다운 색깔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술처럼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는 거예요.

제가 태어난 지도 30년이 넘었고 겨울 양식도 훨씬 풍족해졌지만,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찾는 이가 많다는 게 신기해요. 마음이 겨울 들쥐처럼 쓸쓸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까요? ‘바보 여우와 멍청한 고양이’ 같은 주변 이야기에 질려서, ‘하늘 나라에 사는 네 마리 들쥐’가 만드는 사계절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시인을 알아보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까요? 어쨌든, 반쯤 감긴 눈으로 햇살과 색깔과 언어에 대해 얘기하는 예술가들을 보시거든, 그게 모두 저, 프레드릭이려니 생각하시고 귀 기울여 주시겠어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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