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6억때문에 날치기하다니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09분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의회정치란 과연 ‘개발에 편자’ 같은 것일까. 정치평론을 하면서 의회문제를 다룬 지 어언 20년이 넘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한결같이 지적되면서도 결코 개선되지 않는 것은 국회의 파행적 운영방식과 물리적 힘에 의해 원내 입법과정을 조타해 보려는 다수당의 철부지 같은 자세다.

이런 역대 다수당의 행태를 두고 분노하기도 하고 몸서리쳐 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기는 마치 쇠심줄 같다.

자민련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위당설법(爲黨設法)’을 두고 여당은 다시 날치기라는 한심한 수법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번의 날치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망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대가 이미 그런 작태로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개방되고 개명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정파간의 대결과 갈등으로 국력을 소진하기에는 나라의 주변 정세가 너무나도 급변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만도 아니다.

도대체 국회 운영의 근간이 되는 국회법마저 물리적인 힘으로 처리한다면 그런 국회에서 무슨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정국이 경색되면서 국회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오욕으로 점철된 지난 세월의 의정사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지 않는가. 어찌어찌해서 국회 운영이 다시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국회법에 합의하지 않은 여야가 운영하는 국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 국회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후 최초로 원이 구성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의사규칙에 대한 원내 정파간의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지난 회차의 의회에서 활용되던 의사 규칙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원이 구성되면 그 원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동의와 승인에 의해 새로운 의사 규칙을 정하지 않고서는 의사 규칙의 권위와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의사 규칙이 마음으로부터 존중되지 않는 곳에서는 정치적 합의 도출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국회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면 이미 싹수부터 틀린 것이다. 더욱이 이번의 날치기 파동은 그 정략적 산법마저 잘못됐다.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돼야 교섭 대상이 되고 그 결과 원내 운영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처음부터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자민련은 이미 여야간 정치적 흥정과 거래의 중심축에 서 왔으며, 소수파임에도 불구하고 총리, 국회부의장, 상임위원회 위원 배분 등에서 요직을 할애받았다. 그런 만큼 이번의 날치기 파동이 자민련으로 하여금 교섭단체가 얻게 되는 부수효과, 즉 정책연구위원, 교섭단체 사무실, 정치자금 등의 배정에서 보다 유리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는 평가가 무리는 아니다. 이를 금액으로 치면 약 6억원 정도라고 하니, 이번 파동은 단돈 6억원에 민주주의를 장사(葬事)지낸 셈이다.

더욱이 교섭단체제도는 그것 자체가 우리의 정치 현실에 비춰 볼 때 과연 존속시킬 가치가 있는지를 의심받던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당 수뇌부에 의한 평의원의 구속과 강압이 지나쳐 의회주의의 기본정신을 살리기가 어렵다는 평가였다. 그런 만큼 국회개혁이 나라 전체 개혁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교섭단체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작업에 눈을 돌렸어야 옳다. 명분과 실리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이렇게까지 국정의 기본 틀을 유린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에 무리수가 동원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에도 한가닥 위안이 되는 것은 여야의 합의가 아니면 어느 누구에게도 본회의장 의사봉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국회의장의 자세다. 이런 국회의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 국회의장은 국회 운영에 관한 한 최후의 심판자이기도 한 것이다. 부디 국회 운영의 금도를 지켜 의회주의를 수렁에서 건져낸 최초의 국회의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박재창(숙명여대 교수·의회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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