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동북아 美軍 위상 흔들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53분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서방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전인 20일 오키나와에 있는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인 ‘카데나’에서는 2만5000명이 ‘인간띠 잇기’ 행사를 벌인다. 이런 반미시위는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일로 주최측이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

또 한국에서는 최근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며 시민단체들이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잇따라 시위를 벌였다. 주한미군측은 병사들에게 가급적 저녁에 외부출입을 삼갈 것을 권고했다.

반세기 넘게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방어의 보루였던 이들 두 지역에 주둔해온 미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아시아 주둔 미군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최근호 커버스토리에서 ‘병사들이여, 잘가’라는 제목으로 흔들리는 아시아주둔 미군의 위상을 정면으로 다뤘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각각 3만7000명, 4만1200명. 이들 주둔군은 방위를 대신 맡아준다는 이유로 우월적 지위의 협정을 체결해놓고 있다. 한국은 미군범죄의 재판관할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며 일본은 매년 50억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일본야당은 이 비용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내년 3월로 만료되는 ‘미군주둔 경비부담 협정’을 둘러싼 양국 협의에서 100억엔 가량을 삭감키로 합의했다. 또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들의 민간인 살해, 성폭행 등 파렴치 범죄가 늘면서 시민들의 반감도 고조되고 있다.아직은 ‘양키 고 홈’을 외치는 단계는 아니지만 불만의 수위가 점차 높아져 곧 위험수위에 이를지도 모를 상황.

지난달 주일미대사관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54%가 미군을 감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에서는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면 미군을 감축해야 한다는 응답이 57%, 전면철수도 11%나 나왔다.

이런 일반 정서와는 달리 한국과 일본 정부는 지역안정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의 주둔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 미국도 한반도에서 외교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아시아는 ‘여전히 분쟁위험 지역’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거명하지는 않지만 ‘21세기 최대 가상적국’으로 이미 중국을 상정해놓은 상태. 6월 미 국방부의 ‘비전 2020’에서도 이런 점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은 주둔군 감축 내지 철수에 대비해야 할 단계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특히 주둔군의 존재의미가 점차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의 상당 부분을 잃을 수도 있다고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8년전 미군이 필리핀의 수비크만과 클라크기지에서 철수한 것도 필리핀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 뉴스위크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미국정부는 주둔국 시민들과 보다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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