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이 답할 차례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일본 신문들도 독일 정부와 경제계가 나치시절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기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 교수의 코멘트까지 게재했다. “전후보상에 관해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해결이 됐다고 주장해온 일본처럼 독일도 같은 입장을 취해 왔으나 결국 개인보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본이 지금까지의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독일의 결단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신문이 기사 말미에 “독일의 결정은 일본의 전후보상문제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가해자라는 입장은 독일과 일본이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한쪽은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현재’까지 노력하고 있는데 한쪽은 끈질기게 과거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과거를 인정하는 것은 일본인 스스로가 일본인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자학사관’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다.

그러면 일본은 인권을 소홀히 하는 나라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현재 일본과 북한의 수교협상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은 일본인 피랍문제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듯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다. 10명의 피랍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교정상화가 어렵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소수의 일본 국민이 다수의 외국 국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이중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본은 종종 50년이나 지난 문제를 지금 따져서 무엇하느냐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일본인 피랍문제도 수십년이 지나면 체념할 수 있을 것인가.

독일에서 만든 보상기금의 이름은 ‘기억 책임 미래’다. 기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의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대답해야 할 차례다.

<심규선기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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