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감투論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93년 말 스스로 사임한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 후임을 결정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먼저 해군대장 출신인 보비 인먼을 지명했으나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가 난 상황에서는 국방장관직을 맡을 수 없다며 클린턴의 제의를 거절했다. 클린턴은 이어 당시 상원 군사위원장이던 샘 넌에게 맡아달라고 했으나 그는 “상원에서 일하는 것이 국가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며 고개를 돌렸다. 결국 국방 부(副)장관이던 윌리엄 페리가 친구인 앨 고어 부통령의 권유에 못 이겨 장관에 취임했다.

▷98년 4월, 클린턴행정부의 최장수 장관이었던 페데리코 페나 에너지장관이 전격 사임했다. 첫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다 연봉 14만8000여달러(약 1억5000만원)로는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것이 사임 이유였다. CNN종군기자 크리스티엔 아만포와 결혼한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 역시 아이를 돌보고 아내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4월 사임했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감투’를 내놓아도 그 보수로는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 없다, 생계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사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감투’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거의 ‘감투 신봉론’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개각설이 나도니까 여권 실세의 집 문앞은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화자찬으로 가득 찬 자기 이력서를 들고 기웃거리는가 하면 유력한 경쟁자로 오르내리는 인사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험담을 퍼뜨리는 ‘적극적’인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여권 실세를 매개로 어떻게 하든 청와대쪽에 선을 대보겠다는 심산이다.

▷작년 말 우리 정부가 발표한 장관의 연간 보수 총 수령액은 7393만5000원, 월 6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감투’에 눈이 충혈된 사람들은 그같은 월급 보고 달려드는 것은 아닐 게다. 장관‘감투’만 쓴다면 하루 아침에 명예와 권력,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저기 실세집 문앞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장관이 되면 ‘할 짓’이야 뻔하지 않은가.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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