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석규/'4强외교' 틀 다시 짜자

  • 입력 2000년 7월 17일 19시 24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가상적(假想敵)으로 인식돼 온 북한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동북아 안보환경 속에서 불안과 위협의 원천적 존재였던 북한이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반자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 4강국들은 하나같이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하고 평가하며 기대를 가지면서도 남북한 관계 개선과 더불어 새로이 조성될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자국의 이해를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확산 방지라는 범세계적 전략 차원에서 북한의 핵동결과 미사일 개발 저지를 위한 교섭을 전담해 왔다. 그동안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으로 뒷전에 밀렸던 남북한 관계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면에 부상하고 한반도 문제의 주역이 남북한이 되는 변화를 미국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주목된다.

우리의 안보는 한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을 버팀축으로 한 한미동맹 관계에 의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포함해 어느 나라도 명시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언급한 바 없다. 이것은 어쩌면 주한미군의 존속이 동북아의 모든 나라의 이해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북한이 화해의 첫걸음을 시작했다고 해서 미국이 큰 틀의 아시아 전략을 당장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미 동맹관계와 남북한 접근을 양립시킬 수 있는 외교정책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미일 공조체제는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완전히 소멸되고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기까지 한미방위조약을 주축으로 한 안보태세가 이완돼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첫걸음에 도취돼 동맹국의 신뢰를 잃게 되면 오히려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먼저 거론할지도 모른다.

남북한 관계개선이 미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북상(北上)에 제동을 가해 중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일반론은 수긍할 수 있다. 남한과의 공존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북한에는 한반도의 안정적 현상유지를 바라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다변적 개방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일본도 이제 한미일 공조라는 간접적인 대북한 관계보다 독자적으로 진행중인 북한과의 수교 교섭에 무게를 실을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한 안보논리의 명분이 약화되지 않을지, 언젠가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감축될 경우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여 주둔하고 있는 주일미군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검토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남북한과 주변 4강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다자안보대화체제 창설을 추진해야 한다. 주변 4강으로서는 각기 이해가 다르므로 우리가 먼저 제안함으로써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굳건한 안보태세 위에서 남북한 화해의 장을 확대함과 동시에 주변 4강과의 관계를 조화시켜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야 할 한국 외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중요하다.

김석규(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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