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툭하면 비상등 얌체 긴급차량 많다

  • 입력 2000년 7월 12일 18시 47분


10일 오전 10시경 서울 마포대교와 강북강변로를 이용하려는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던 공덕로타리 앞에서 ‘K병원’ 마크를 단 앰뷸런스가 갑자기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 앰뷸런스는 서대문구 충정로에서부터 한동안 아무런 신호 없이 달려가다 길이 막히자 갑자기 사이렌을 울렸다. 긴급환자를 태우러 가는 중이거나 태우고 있었다면 애초부터 사이렌과 경광등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앰뷸런스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앰뷸런스는 이때부터 멋대로 중앙선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반대쪽 차로로 질주를 시작하자 마주 오던 차들이 급히 핸들을 틀어 길을 비켜줬다. 앰뷸런스는 20분 이상씩이나 기다리던 다른 차량들을 제치고 유유히 로터리를 벗어났다.

▼환자 없어도 사이렌▼

마포대교에서도 ‘횡포’는 계속됐다. 양쪽 차로가 꽉 막혀 중앙선을 넘기 어렵자 경광등과 함께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높이며 앞차에 양보를 강요했다. 앞차 운전자들이 힘겹게 한두대씩 옆 차로로 비켜준 덕분에 앰뷸런스는 4분여 만에 다리를 통과했다.

영등포까지 질주하던 앰뷸런스는 갑자기 문래동에서 인도 쪽에 멈췄다. 병원 직원인 듯한 30대 남자가 나오더니 길가 상점에 들어가 음료수 캔 3개를 사들고 나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도 긴급환자를 실은 긴장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취재진이 접근해 “어떤 환자를 태웠느냐”고 묻자 이 남자는 “아주 급한 환자다. 병명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급한 환자를 싣고도 음료수 살 시간은 있느냐”는 질문에 “환자가 오다가 좀 괜찮아진 것 같다. 음료수 사는 데 5분도 안 걸렸는데 그 사이에 큰일이야 나겠느냐”고 변명했다. 그는 환자를 보여달라는 요청에 “안 된다”고 짧게 거절하고는 급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규제방법 전혀 없어▼

한 종합병원 차량 담당자는 “솔직히 환자가 없어도 운전자가 임의로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이를 통제할 방법은 전혀 없으며 운전자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앰뷸런스나 소방차 경찰순찰차 등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면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길을 잘 내준다. 이런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긴급차량들이 악용하는 사례는 자주 볼 수 있다.

경찰의 순찰차가 긴급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아무데서나 U턴을 하는 등 교통법규를 위반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통지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순찰차도 법규 위반▼

또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서대문경찰서 앞에는 매일 아침마다 3대의 경찰 버스가 주차돼 있다. 45인승 대형이기 때문에 1개 차로를 완전히 막아버린다. 출근시간 구파발 불광동 방면에서 이 네거리를 지나 서울역 방면으로 가는 차량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서 주차장이 워낙 좁아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긴급차량 운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들에 대한 교육과 감독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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