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Sports]투수 VS 타자

  • 입력 2000년 7월 11일 18시 59분


투수들에게 요즘 홈런이 왜 그렇게 많이 터지느냐고 물으면, 지금까지 억눌려 살아왔던 사람이 털어놓는 것 같은 격정적인 일장 연설을 들을 수 있다.

“심판들이 스트라이크 존을 너무 좁게 잡는다” “요즘 새로 지어진 야구장은 너무 좁게 설계돼 있다” “심판들이 공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는다” “마운드가 평소보다 더 낮다” 등이 그 내용이다.

하지만 투수가 아닌 타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능글맞게 히죽거릴 것이다. 그리고 “대답이 뻔하지 않은가요”라며 요즘 타자들이 옛날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말할 것이다. 자신들이 매일 기계처럼 훈련을 하고, 경기 중에도 짬을 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투수들의 약점을 연구한다고 역설할 것이다.

홈런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한 이 두 가지 상충되는 견해는 투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변의 장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장벽은 서로 다른 팀에 속한 투수와 타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팀에 속한 선수 사이에서도 이 장벽만큼 선수들을 확실하게 갈라놓는 것은 없다. 간단히 말해서 투수와 타자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며, 그들은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 심지어는 그들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조차 다르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 장벽에 대해 선수들은 나름대로 이론을 갖고 있다. 전직 내야수이며 현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있는 필 가너는 투수와 타자 사이의 차이는 “감성 중심의 인간과 지성 중심의 인간 사이의 차이와 같다”면서 “투수들은 더 난해하고 생각이 많은 반면, 우리 같은 타자들은 무조건 두들기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또 애틀랜타의 투수인 톰 글래바인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타자들은 우리의 지성과 게임을 내다보는 능력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투수와 타자가 모두 똑같다. 어린이 야구단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은 대개 투수를 맡고, 마운드에 서지 않을 때는 유격수를 맡는다.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마이너리그에서부터이다. 야수들은 매일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즌 중에는 녹초가 된다. 그러나 구원투수들은 불펜에 자기들끼리 앉아 있다가 감독의 호출을 받은 뒤에야 경기장에 나서고 선발투수들은 다섯 경기 중에 한 경기에만 출전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따라서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서 가장 늦은 시간까지 바에 남아있는 것도 투수들이고, 경기가 벌어지는 모든 대도시의 골프 코스를 훤하게 꿰뚫고 골프를 즐기는 것도 투수들이다. 특히 글래빈과 그레그 매덕스가 버티고 있는 애틀랜타의 저 유명한 선발투수진은 골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경기에 나갈 때는 투수와 타자들이 모두 팀 동료로서 서로의 차이점을 묻어버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투수는 투수대로 타자들이 좋은 공에 헛스윙을 하는 것을 보며 어이없어 하고, 야수는 야수대로 투수의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저만큼은 던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상대팀 투수가 위협적인 공을 던지기라도 하면 갈등이 조금 더 강렬해진다. 투수는 자기 팀 타자가 상대팀 투수의 위협구에 당했을 때, 자기도 상대팀 타자의 등을 노리고 빠른 볼을 던져야 한다. 만약 투수가 이렇게 보복을 하지 않으면, 라커룸에서 마찰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투수들은 특성상 매일 경기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직 투수들이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드물다. 야수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수출신 감독들 역시 투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감독들 중에 포수출신이 많은 데에는 이처럼 투수와 야수 사이의 장벽이 한 몫을 하고 있다.

포수들은 야수들처럼 매일 경기에 나서면서도, 투수를 반드시 잘 이해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킨 다섯 명의 감독들 중에서 네 명이 평생은 아닐망정 적어도 잠깐이나마 포수 역할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00709mag-basebal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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