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법관 청문회가 남긴 숙제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3분


헌정 사상 첫 입법부의 사법부 인물 검증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 이틀간의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어제 끝났다. 이번 청문회는 국회가 대통령의 사법부 구성을 실질적으로 견제 감시하는 전범(典範)이 됐고 그동안 성역으로 인식돼온 법관의 판결과 성향이 평가대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청문특위 위원들이 여야로 갈려 공방을 벌였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와는 달리 비교적 차분하게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사법권 독립에 대한 대법관 후보자들의 소신 자질 등을 검증하려고 나름대로 애썼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원들의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 미리 준비한 원론 수준의 단발성 질문을 이어나가는 데 그쳐 인권문제 등에 대한 대법관 후보자들의 사법적 소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동안 수천건의 판결을 내린 법관출신 후보자들에 대해 특정사건만 놓고 성향을 규정지으려 한 것도 무리였다. 이 역시 준비부족의 결과다. 이틀간 6명을 검증해야 하는 시간적 제약도 문제였다.

이와 함께 변호사출신 특위위원들의 개인적인 인연, 선거사범 재판 등을 의식한 몸사리기로 질문의 수위가 낮아진 게 아니냐는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의 해석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관 후보자들의 소극적인 답변태도도 겉핥기식 청문회를 부추겼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법관으로서의 소신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하기에 적절치 않다”거나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식으로 핵심을 피해간 경우가 많았다.

물론 판례 중심의 법체계를 갖고 있고, 그래서 대법관의 의견이 곧 법으로 통하는 미국의 대법관 청문회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인권, 사법부 독립 등에 대한 대법관 후보자들의 소신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했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세우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법관 후보자들의 조심스러운 답변은 평생 말을 아껴야 하는 숙명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청문회 준비기간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사청문회법을 고쳐야 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현재의 준비기간 열흘과 이틀간의 청문회로는 통과의례에 그칠 수밖에 없다. 특위가 낼 이번 청문회 보고서에는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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