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3대원칙 좋지만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35분


중요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면서 정부의 정책 집행 및 조정 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한 듯 정책 추진의 ‘3대 원칙’ 같은 것을 천명했다. 첫째는 충분한 준비를 하고, 둘째는 당사자들과 성의 있는 대화를 하고, 셋째는 결정된 정책은 원칙과 국익을 바탕으로 엄격히 집행하라는 요지다.

옳은 이야기다. 그동안 주무장관들은 준비를 제대로 안했고 관련 당사자들과 대화를 소홀히 했다. 또 임기응변의 말 바꾸기를 거듭하면서 원칙이 실종돼 신뢰를 잃었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수십조원이나 쏟아부어도 부실이 여전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천명했다. 그러나 정작 ‘준비’와 ‘대화’를 소홀히 하다가 금융노련이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자 금감위원장은 “합병을 하더라도 중복 점포와 인원을 줄이지 않겠다”며 구조조정의 대원칙을 희생시키는 말 바꾸기를 했다.

의약분업도 충분한 준비와 관련단체들과의 대화가 부족해 의사 집단폐업을 부르며 엄청난 국민불편을 초래했다.

주무 장관들이 한편으로는 노조,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 눈치를 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니 이익단체들은 번번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의사 집단 폐업사태도 대통령이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약사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해결됐다. 주 5일 근무제를 요구한 총파업도 민주노총이 대통령이 연내 도입 원칙을 밝히라고 요구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수용하는 발언을 해 마무리됐다. 이처럼 모든 사회 갈등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 1인 개혁은 행정부의 무력증과 정책 불신을 심화시키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노동부는 금융노련의 파업에 대해 재경부와 금감위에만 미루고 한국노총이나 금융산업노조 위원장 등을 만나 파업 자제를 요청하고 중재하는 기본 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더욱 민망스러운 것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노사정위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오찬을 함께 할 계획을 세웠다가 한국노총측의 불참으로 무기 연기된 것이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매달리다 보니 시급한 민생이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많다. 통일부 장관의 ‘이산가족의 자유의사에 따른 거주지 선택’ 같은 발언도 남북관계의 민감성을 망각한 부적절한 발언이다.

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이후 저소득층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졌다. 남북관계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현안과 민생을 챙기면서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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