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화물車 낙하물 공포'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12분


가을 하늘이 맑던 지난해 9월 강원 홍천군 56번 국도. 생수통을 실은 트럭이 커브길을 돌다가 갑자기 기우뚱하는 듯했다. 이어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트럭 적재함에 실려있던 18ℓ짜리 생수통이 왼쪽 옆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물통은 반대편 차선에서 트럭 옆을 지나던 코란도 승용차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 피할 틈도 없었다. 승용차 운전자 김모씨(39)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승용차 윗부분은 완전히 찌그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고 원인은 간단했다. 트럭 운전자가 무거운 생수통을 적재함에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은 채 과속으로 커브를 돌았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화물차가 화물을 허술하게 실어 운행 도중 떨어지는 경우 곧바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또 낙하물에 직접 부딪치지 않더라도 낙하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나 급작스런 핸들조작으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속도서 年 130명 死傷▼

올 2월 22일 경부선 상행선 경남 언양 부근을 달리던 4.5t트럭에서 흑연 4포대가 떨어져 흑연가루가 날리면서 뒤따르던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다가 연쇄충돌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7명이 크게 다치고 상행선이 한 시간가량 완전히 막혔다. 떨어진 것은 고작 흑연 4포대에 불과했지만 그 피해는 막대했다.

한국도로공사 통계에 따르면 고속도로 상에서 화물자동차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연간 2300여건. 이 가운데 화물차의 적재물 낙하 및 적재불량으로 인한 직접 사고는 연평균 212건에 이른다. 죽거나 다친 사람도 45명이나 됐다. 또 화물이 떨어져 발생한 간접사고도 연평균 177건에 사상자가 85명이었다.

이같은 사고는 주로 인명피해가 난 큰 사고만 집계된 것. 화물이 떨어져 자동차가 찌그러지거나 가볍게 충돌하는 등의 경미한 사고는 하루 1.5건 꼴인 연간 563건에 이른다.

지난해 8월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운전자 156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3%의 운전자가 낙하물로 인해 사고의 위험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특히 10t이상 트럭 운전자의 77%가 화물이 떨어져 사고를 내거나 당했다고 응답했다.

▼10t이상 77% "사고 경험"▼

낙하물에 의한 피해는 꼭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교통지체 도로파손 등 여러 가지 손실을 불러 일으킨다. 98년의 경우 낙하물로 인한 평균 교통지체 시간은 약 55분. 단순히 사고 차량만 치우는 것이 아니라 낙하물을 모두 치워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도로공사는 올해 들어 158개 톨게이트에서 적재 불량 화물차량에 대해 단속을 벌인 결과 5월말까지 총 점검대수 2372만대가운데 8만4544대에 대해 현장에서 다시 화물을 고정시키라고 지시했고, 4만9814대는 회차시켰으며, 846대는 고발했다. 그 결과 화물이 떨어지거나 적재를 잘못한 화물차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지난해 1∼5월 113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동안 56건으로 절반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화물 낙하 사고를 단속하는 법률은 미비하기만 하다. 불량 적재가 적발됐을 경우 내야하는 범칙금은 고작 4∼5만원. 벌점도 없다. 과적차량이 최고 200만원까지 벌금을 내는 것에 비하면 너무 미약한 처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우기 고속도로 외에 국도나 일반 도로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통계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실정이다.

화물 낙하사고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적재함을 박스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게 교통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도로공사 양인성(梁仁成) 교통안전부장은 “트럭 사업주들이 대부분 영세해 400만∼600만원 정도 소요되는 적재함 박스화를 하기 힘들다”며 “정부에서 조성하는 교통안전기금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전문가 기고▼

자동차 등록대수 1,144만대. 6만4800km의 포장도로와 2,000km를 넘어선 고속도로. 불과 3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도로 및 교통수단은 우리 나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간 28만여건의 교통사고와 41만여명의 사상자, OECD 국가 중 사망자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야누스의 얼굴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자동차 보유통계에 의하면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 중 화물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에서 집계한 고속도로에서의 사고비율은 보유대수 비율보다 곱절이나 많은 4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 낙하물사고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도로에 쏟아 놓은 화물로 인한 교통지체는 막대한 물류비용 손실까지 야기한다.

영국의 경우 적재물의 낙하로 인명손상을 유발할 경우 5,000파운드 상당의 벌금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다. 또 독일의 경우 화물을 사슬 등 적재장비로 안전하게 묶고 소음도 발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외국을 여행할 때 도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화물차량은 우리 나라와 달리 적재함이 컨테이너 또는 박스형으로 된 것을 볼 수 있다. 화물차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적재함을 박스형으로 개조할 때 소요되는 비용과 물류표준화 미비로 인한 적재곤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재함 박스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박스화된 차량에 대한 각종 지원대책과 아울러 적재 불량 차량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엄중한 법규의 보완이 시급하다.

권순익(한국도로공사 교통처장)

▽자문위원단(가나다순)〓내남정(손해보험협회 이사)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광희(경찰청 교통심의관)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지광식(건설교통부 수송심의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해동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특별취재팀〓윤정국차장(이슈부 메트로팀·팀장) 이인철(〃교육팀) 송상근(〃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윤상호(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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