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군]이덕환/허준과 현대의학

  • 입력 2000년 6월 28일 19시 18분


요즘 ‘허준’이라는 드라마 덕분에 한방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감동적인 활약을 그린 드라마에서도 감추지 못하는 확실한 사실이 있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이다.

요새 젊은이들이 보리고개를 모른다고 한탄하지만, 갓난아이가 백일을 넘기기 어렵던 시절도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훌륭한 ‘동의보감’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신생아 중에서 돌을 넘기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건강한 삶은 놀라운 현대의학의 덕분이다. 460g의 미숙아를 살려내는 일은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기적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가장 큰 성과는 역시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바로 화학적으로 제조하는 ‘합성약품’의 덕택이다. 현대의학이 전통의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학은 전통의학에서 쌓은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킨 결과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합성약품인 ‘아스피린’이 좋은 보기가 된다. 최근에는 사탕 한 알보다도 싼값에 살 수 있는 아스피린이 심장병 예방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스피린의 역사는 기원전 1550년부터 시작된다. 당시에 남겨진 파피루스에는 버드나무 껍질이 해열과 진통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있었다. 현대 화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던 19세기 중엽에 독일의 화학자들은 버드나무 껍질의 효능이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임을 밝혀냈고, 골치 아픈 산업 쓰레기였던 콜타르에서 장티푸스와 류마티스에 효과가 있는 살리실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렇지만 살리실산은 구역질 때문에 환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약이었다. 이 약 때문에 고통받던 아버지를 위해 독일의 화학자 호프만이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을 살리실산과 반응시켜 먹기도 쉬운 ‘아스피린’을 개발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열이 난다고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면 버드나무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곰의 쓸개에 들어있는 어떤 천연 화학성분이 몸에 좋다고 곰을 멸종 위기에 몰아 넣는 일은 이제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그 유효 성분을 알아내고, 독성을 제거하여 정제하고, 그 효능을 개선하여 값싸고 순수하게 대량으로 합성하는 화학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동의보감’을 신비화하고 자랑만 하기보다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발전시킴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교수)duckhwa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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